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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메마른 봄, 도로시의 지혜 떠올린다

등록 2022-03-23 18:43수정 2022-03-24 02:31

[왜냐면] 박광석 | 기상청장

미국의 고전 판타지 소설 <오즈의 마법사>는 단순히 소설에 그치지 않는다.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오즈의 나라’로 떨어진 도로시는 고향 캔자스로 되돌아가는 과정에 친구 셋을 만나 함께 곤경을 헤쳐나간다. 그중 마녀를 물리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도로시가 사악한 서쪽의 마녀에게 물을 끼얹자 마녀는 소스라치며 외친다. “내 몸에 물이 닿으면 끝이란 걸 몰랐니?” 이는 금본위제도 아래 화폐 공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목인 동시에, 소설 집필 당시 미 사우스다코타주를 휩쓴 최악의 가뭄을 해갈하고자 했던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단 해석이 나온다.

이처럼 소설 속 인물의 말과 행동, 혹은 그 배경에는 당대의 절박한 시대상이 투영되곤 한다.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마녀뿐 아니라 도로시의 고향인 캔자스의 외딴 시골 마을 또한 물이 귀한 잿빛 평원으로 묘사된다. 19세기 말 어린이 동화에 이토록 기상학적 재해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건, 그것이 때때로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을 만큼 중대한 위협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메마른 봄이 만들어 낸 가뭄과 산불 등 기상재해는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다. 우리나라도 지난겨울 역대 최악의 가뭄을 겪은 바 있다. 지난 12월부터 올해 2월 사이 전국 강수량은 13.3㎜에 그쳤는데, 이는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적은 수치에 해당한다. 비가 내린 날도 11.7일로, 역대 가장 짧았다.

건조한 날씨는 곧 산불 소식으로 이어졌다. 지난 2월 말, 우리나라 산불 발생 건수는 200건을 훨씬 웃돌며 예년의 2배를 기록했다. 막 봄에 들어선 3월에도 화마의 기세가 이어져 동해안을 따라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 강릉시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으며, 서울 면적 3분의 1 이상 규모의 산림 손실 피해가 있었다. 일부 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는 등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러한 가뭄과 산불이 기후변화로 더 빈번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2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6차 평가보고서를 승인했는데, 그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21세기 말 아시아 지역의 가뭄이 5~20%까지 증가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이전까지는 5~7년 주기로 가뭄이 발생했으나, 2013년 이후부터 매년 국지적 가뭄이 발생하며 농업 등 관련 분야에서 피해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기상청은 매월 발표하는 가뭄 예·경보에 대한 전망 기술을 개선하여 예보 정확도를 높여갈 계획이다. 또한 산불 대응을 위한 유관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세계기상기구 등 국제기구에서의 역할을 공고히 해 가뭄과 홍수로 인한 식수난 등 기상재난 대응에도 국제적 기여도를 높여갈 생각이다.

얼마 전 공개된 영화 <돈 룩 업>은 재난 대응에 관해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혜성이 다가오는데도 끝내 뭉치지 못한 인류의 끝은 비극적이다. 반면 도로시는 현명했다. 두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까지…. 비록 어딘가 하나씩 부족한 동료일지라도 도로시는 합심하고 협력하여 어려움을 극복했다. 뜨거워지는 지구, 그에 따라 심화하는 가뭄과 산불의 위기 속에 우리는 도로시의 지혜를 마땅히 따라야 하지 않을까.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회오리가 인류를 더욱 뜨겁고 메마른 봄으로 내쫓지 못하도록, 전세계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기후위기 및 기상 재난 대응에 적극 공조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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