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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시작된 평화의 바람

등록 2022-04-13 18:16수정 2022-04-14 02:07

[왜냐면] 박용수 | 고려인동행위원장·한신대 석좌교수

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광주 고려인마을에도 동일한 충격을 가했다. 야만적인 학살과 도시 파괴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고려인마을에 사는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260여명과 우크라이나 이주노동자들에겐 날벼락이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가족과 친구들의 생사를 몰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으로 피난을 떠난 가족들로부터 지원 요청이 쇄도한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의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려댄다. 절망과 탄식의 하소연이다.

그런데 지금 고려인마을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3월13일 최마르크(13)군과 22일 남아니따(10)양에 이어, 우크라이나의 고려인 동포 65명이 5차에 걸쳐 단체로 입국했다. 고려인 동포들은 전쟁 트라우마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무사 입국에 크게 안도하는 표정이다. 고려인마을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300명의 항공료 지원을 목표로 모금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광산구갑)의 제안대로 정부가 고려인 동포 수송을 위해 군용기를 긴급 투입할 경우 입국 동포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고려인 동포 구출과 국내 정착 지원에 적극 나설 때다.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광주 평화의 바람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무서운 전쟁이 터졌는데, 우리 고려인 동포들 돕는 데 써주세요.” 2월 말 전쟁이 터지자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4세 전올가씨가 이천영 목사에게 500만원을 선뜻 건넸다. “사실, 전올가씨가 거금을 쾌척하지 않았으면 항공료 지원은 꿈도 못 꾸죠. 무슨 돈으로 1인당 90만원 정도의 항공료를 지원하겠습니까. 그 돈을 종잣돈 삼아서 무조건 저지르고 본 것이죠. 그랬더니 길이 열리더라고요.”

전올가의 소망이 이 목사의 비전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 목사는 곧바로 <고려방송>(GBS)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고려인 돕기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광산구청과 각급 기관 및 단체가 발 벗고 나서면서 사흘 만에 1억원 가까이 모아져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전달할 수 있었다. 고려인 동포들이 속속 귀국하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모금액도 1억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광주에 도착한 고려인 동포들과 함께 ‘월곡동에서 우크라이나까지, 평화의 바람아 불어라’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새날학교 학생들의 절친이자 우크라이나 사람, 안드레이 선생은 폴란드 난민촌에 방치된 우크라이나 어린이 300명을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에 폴란드를 오간다. 안드레이에게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일은 피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급박한 일상이 됐다.

나비효과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키는 현상. 기적 같은 나비효과가 지금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다. 평화의 날갯짓이 시작된 곳은 광주 고려인마을이다. 그 중심에 이천영 목사가 있다. 이천영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 그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란 증거가 차고 넘친다. 얼어붙은 한반도에도 평화의 봄바람이 다시 불 수 있을까. 평화의 봄바람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 반대편을 강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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