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병호 | 남북교육연구소장·한국통일교육학회 부회장
수천명 이상이 죽고 핵전쟁과 장기전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보며 전쟁과 폭력의 비극성을 실감한다. 한반도에서만큼은 결코 다시는 전쟁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고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여 이를 추진한다’(4조),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66조)라고 명시되어 있다. 통일교육지원법 역시 ‘정부는 초·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초·중등학교의 통일교육을 진흥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통일부 장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통일교육이 초·중등학교의 교육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교육부 장관 또는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 및 특별자치도 교육감에게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을 받은 교육부 장관 또는 교육감은 교육과정에 통일교육을 반영하여야 한다’(8조)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학교 통일교육의 실태는 매우 부족하고 미흡하다. 무엇보다 교육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통일부와 교육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매년 실시하는 통일교육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초·중·고 학생들은 통일과 관련한 교과교육과 창의적 체험활동을 각각 연평균 8시간 이하로 받거나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르치는 교과도 도덕, 역사, 사회 등 몇개 되지 않으며 교육내용도 교과서 뒷부분에 조금 나오며,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매우 미흡하다. 고 2·3 학생들의 경우 통일교육 내용이 포함된 과목을 선택하지 않으면, 2년 동안 통일교육을 전혀 받지 않게 된다. 엠제트(MZ)세대라고 말하는 2030세대들의 통일의식이 학년이 높아질수록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낮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교육시간뿐만 아니라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남북의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평화와 통일 또는 통합 교육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교류·협력의 중요성과 실천, 북한에 대한 사실적 이해와 차이점 존중,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와 유라시아의 평화와 통합의 중요성 등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인이 아닌 청소년들에게 국가안보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북한은 협력의 대상이자 경계의 대상이라는 등 평화 통일교육의 기본 목적에 어긋나는 교육목표와 교육내용도 있다. 심지어 어떤 교과서는 10년 전 발행된 통일연구원의 <북한 인권 백서> 내용을 마치 오늘날 북한 인권 실태인 양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몇달 후 교육부가 고시할 2022 개정 교육과정(안)을 보면 설상가상이라 할 정도로 더욱 참담하다. 현재 학교 통일교육은 독립 과목이 아닌 범교과학습 주제로서의 교육과정적 지위를 지니며, 교과교육과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가능하다. 교육과정을 개발·연구하는 한 연구원에 의하면 2022 개정 교육과정(안)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한 범교과학습 주제 교육은 삭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매우 적은 학교 통일교육시간은 2분의 1로 줄어들게 된다.
개선책으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어떤 내용이 반영되어야 할까? 첫째, 명칭이 통일교육에서 ‘평화·통일교육’ 또는 ‘평화 통일교육’ 등으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창의적 체험활동이 유지되어야 한다. 셋째, 민주시민교육이나 생태전환교육과 같이 전 교과의 핵심 교육내용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넷째, 교육내용과 교육시간이 늘어나야 한다. 다섯째, 고등학교에 ‘평화와 통합’ 등 진로 또는 교양 선택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여섯째, 2021년 보수·중도·진보 및 6개 종단이 4년여의 토론과 합의로 도출한 통일국민협약안이 반영되어야 한다.
고등학교 ‘평화와 통합’ 등의 과목 개설은 정치논리가 아닌 교육논리에 따른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육과정 연구와 개발을 가능하게 하고, 범교과학습 주제로서 학교 평화 통일교육을 이끌며, 평화 통일교육의 핵심축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또 남남갈등이란 고질적인 국가·사회적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모쪼록 새 정부의 통 큰 결정을 학수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