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온이 15도 이상으로 오르면 꿀벌은 비행을 하기 시작한다. 남쪽 지역부터 3~4월이면 월동을 마친 벌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올해는 꿀벌이 사라지고 텅 빈 벌통이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왜냐면] 노청한 |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요즘 <지정생존자>란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란 미국에서 중대한 재난이나 테러 등 비상사태로 대통령과 그 승계자들이 사고를 당하는 사태에 대비해 별도 안전 장소에 대기하도록 하는 지정된 행정부 각료다. 유사시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는데, 드라마에서 지정생존자로 지명됐다가 얼떨결에 대통령에 취임한 무소속 대통령 커크먼은 은근히 국민들 마음을 움직인다.
드라마 시즌 2~9는 매달 백악관으로 오는 편지 1만여통 가운데 3개를 뽑아 대통령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주는 ‘편지의 날’ 얘기다. 편지 중 하나가 ‘꿀벌 실종 사건’이다. 부부가 키우는 벌통의 벌들이 사라진다. 남편은 비행기 소음이나 공중 전파를 의심하며 연방항공우주국에 민원을 제기하지만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한다. 급기야 백악관으로 편지를 보낸다. 대통령은 “벌이 죽으면 식물도, 사람도 모두 죽는다. 식물 중 80%가 벌의 수분(受粉)에 의해 열매를 맺는다”며 두 참모에게 중책을 맡긴다. 양봉 농가에서 로열젤리 덩어리를 찾아내자 장본인인 부인이 실토한다. 남편이 벌에게 시간을 다 뺏겨 남편을 찾고자 벌들의 먹이를 강탈했단다. 한편 남편은 사슴이 여러 먹이 중 하필 장미만 먹어치워 살충제를 뿌렸다던가. 꿀벌이 사라지는 세계적 현상을 집단지성에 호소하는 시작과는 달리 부부싸움으로 종결한 작가의 얄미움이 여운을 남긴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부지런한 꿀벌’이 줄어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꿀벌에 기생하는 천적 해충인 응애가 급증해 일부 양봉 농가에서 살충제를 많이 뿌린데다 겨울 날씨까지 따뜻해지면서 꿀벌의 생존환경이 열악해졌다. 최대 밀원인 아카시아꽃이 피는 5, 6월에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부는 저온 현상이 나타난다. 벌은 바깥이 따뜻하면 본능적으로 벌통 밖으로 나와 일을 하려고 한다. 따뜻한 줄 알고 나왔는데 기온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침에 보면 꽃 속에 벌들이 죽어 있다. 결국 이상기후→면역 약화→병해충→이상기후라는 ‘악재의 연결고리’가 꿀벌 실종 사건을 초래한다. 꿀벌이 실종되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살기 어렵다. 모든 위기는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꿀벌 감소를 막기 위해 꿀벌호텔과 정류장을 도입했다. 우리 서울도 도심 곳곳에 곤충호텔을 만들어 보급 중이고, 코스타리카는 꿀벌에게 시민권을 주고 도심 녹지공간을 늘렸다. 독일은 야간조명을 규제하고, 영국은 야생화를 많이 심었다. 우리 충남은 2018년부터 벌이 날아가 꿀과 화분을 채취하는 밀원수를 600만그루 넘게 식재했다. 이렇듯 전세계가 꿀벌을 돕는다.
벌들은 5월10일 전후 피는 꽃을 제일 좋아한다. 마침 5월10일 취임하는 새 정부 대통령은 “오는 5월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벌의 날’입니다. 해마다 줄어드는 벌들을 살리기 위해 남북 공동대응이 필요합니다”며 북한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어떨까. 이러다가 꿀벌 나라에도 ‘지정생존자’를 지명해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