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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산불피해 숲 ‘자연복원’이 최선

등록 2022-05-04 18:11수정 2022-05-05 02:08

인공조림 ‘토양침식’ 부작용 심각
경북 울진과 삼척 일대에 대형산불이 계속된 지난 3월5일 저녁 경북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한 주민이 민가 가까이 다가온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울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경북 울진과 삼척 일대에 대형산불이 계속된 지난 3월5일 저녁 경북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한 주민이 민가 가까이 다가온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울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왜냐면] 정연숙 |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

산불 피해를 입었다, 어떻게 복원할까? 많은 사람은 “조림해야 하지 않나요?”로 반문한다. 그냥 두면 너무 느리거나, 뭔가를 생산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1970년대 전후 거의 전 국토가 헐벗었다. 주변 산이 모두 흙이 벌겋게 드러난 민둥산이라서, 산에서 쓸려간 토사로 여름마다 강물은 흙탕물이었다. 이용할 수 있는 물은 부족했고, 강바닥은 높아져서 매년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이것이 적극적 녹화정책 추진의 이유였다. 60대 이상 국민 중 산에 나무를 심어보지 않은 분은 드물다. 내 손으로 심은 나무들이 푸른 숲으로 바뀌는 것을 지켜봤다. 이것이 조림신화의 배경이다.

그런데 현재 숲의 대부분은 조림이 아니라 자연복원의 결과라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조림지는 현재 숲 면적의 15% 정도이다(물론 조림 면적은 훨씬 많았다). 산림녹화 정책으로 난방연료를 나무에서 화석연료로 바꿨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숲 이용이 감소한 덕에 스스로 복원된 결과이다. 조림 실패나 방치로 다시 자연복원된 곳도 아주 많다.

훼손된 자연의 복원에는 ‘창의성을 발휘하지 말고’ 자연을 모방하라는 것이 현재 국제사회의 주요 원칙이다. 1996년 고성 산불과 2000년 동해안 산불 뒤 시작된 자연복원 논쟁이 25년을 넘었고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당시 민관학연 공동조사단이 결성되었고 총면적의 49%를 자연복원하기로 합의했었다. 20여년 자연복원된 숲은 자연의 모습대로 ‘활엽수림’으로 복원되고 있다. 그런데도 산림청은 모르쇠로 또 되돌이표이다. 지역 주민과 산주의 요구를 이유로 목재와 송이 생산을 위해 조림하겠다고 한다. 소나무림이 산불에 취약하다니, 내화수림을 조성하겠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형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동해안 지역은 앞으로도 산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기후 특성에 더해, 어린 소나무 숲 면적이 넓고, 연속해서 분포하기 때문이다. 어린 숲은 키가 작고 빽빽해서 연료의 밀도가 높다. 빠르게 대형산불로 번진다. 지역 주민의 의견이 정말 궁금하다. 고성부터 속초의 시가지, 울진의 원전 코앞까지 불길이 넘실댔다. 대형산불의 위험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소나무 조림을 원할까.

고성 산불 후 송이 균사를 접종한 소나무 묘목까지 심었으나, 송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황당한 것은 활엽수를 조림해서 불에 강한 내화수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연복원하면 저절로 활엽수림으로 복원되는데, 예산을 들이고 토양을 침식시켜서 활엽수를 인공조림한다니…. 소나무 조림만이 문제는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토양 침식이다. 조림하려면 임도 개설과 중장비 투입이 불가피하다. 불탄 나무와 재생목 자르고 나무 심는 과정에서 토사가 쓸려 내려간다(이것은 다른 벌목지도 같다). 연구 결과 자연복원지에서조차 토양이 안정되는 7년간 누적 토사량이 헥타르당 30~70톤에 달했다. 조림지에서는 얼마나 많은 토양이 유실될까? 토사가 쓸려 들어간 근해의 어장 피해는 어떨까. 우리나라 토양은 80% 이상이 침식성 토양이다. 그래서 2000년 공동조사단 보고서에도 ‘3헥타르 이상 모두 베기 금지’가 명시됐다. 그러나 수십, 수백 헥타르의 불탄 숲을 싹쓸이로 베었다. 상수원인 임하댐 주변도 싹쓸이로 벌목된 것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임도 건설을 주장할 때는 선진국 예를 들면서, 토양과 숲 생태계 복원은 왜 그를 따르지 않는가.

언론에서는 자연복원과 인공조림의 장단점을 따지며 선택의 문제처럼 다루지만, 국립공원의 숲을 보라. 조림한 숲이 아니다. 자연복원된 숲으로서 수많은 생명이 깃들여 사는 생태계이다. 선택할 문제는 오히려 인공조림이다.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필요하다면 ‘선택적으로’ 할 수 있다. 동해안의 대부분인 척박한 땅에서 경제성 목재를 생산할 수 있을까. 국가가 예산을 들여서 조림해준다는데 반대하는 산주가 있을까. 사유림이 산주만의 것일까.

숲 복원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시급하지 않다. 산림청은 2000년 공동조사단의 사회적 합의에 대한 시행 결과를 평가하고,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반영해서 종합적인 복원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시급한 것은 지금도 전국에서 하고 있는 싹쓸이 벌목과 조림의 후진적 정책을 중단하는 것이다. 토양을 보전하고 숲을 살리는 산림청을 기대한다. 70년대 정책,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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