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계동 노원고등학교 앞에 설치된 ‘태양광 방음벽’ 주변을 차량들이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임성희 |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
우리나라에서 하루 새 2만마리가 투명 방음창 등에 부딪혀 죽는다. 유리창이라는 장애물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음벽 투명창에 태양광 설비를 부착하면 새 충돌을 방지하며 전기도 생산할 수 있다.
도로라는 공간을 활용한 태양광발전 잠재량은 의외로 많고 다양하다. 중앙분리대나 방음터널 지붕에 설치할 수도 있다. 고속도로 성토부 사면을 활용할 수도 있고, 선형 개량으로 폐도로가 된 공간을 활용해도 된다. 폐선 구간은 폭이 좁고 길이가 길어 매각과 활용이 쉽지 않아 방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태양광발전에는 적합하다. 철로와 그 주변 역시 마찬가지다.
도로와 철도 주변 부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도로 개설은 마을과 논밭을 가르며, 산허리를 잘라내고 마을 공동체와 생태계를 단절시키는 토목공사다. 완공 뒤 운영 중에는 로드킬(동물 찻길 사고)을 발생시켜 애꿎은 동물들이 희생된다. 그렇게 이미 주변을 훼손하며 들어선 도로 부지를 활용하면, 추가적인 심한 환경훼손 없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국민 대다수는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생태적으로 민감한 산지나 농지를 엎고 조성한 태양광 설비들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에너지 설비가 환경을 훼손한다는 모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재생에너지 확대의 발목을 붙들었다는 얘기다. 여기에 외부 발전사업자가 주변 경관을 해치고 주민 의견수렴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태양광 설비를 조성하고 나선 경우엔, 지역공동체 내부 갈등으로도 이어졌다.
도로와 철도 주변 유휴부지들은 이미 한차례 훼손을 거친 곳이다. 그렇기에 기존 용도와의 충돌 문제나 지역공동체의 거부감, 매입 비용 문제 등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활용도를 높일 필요가 있는 공공부지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전용된(사라진) 농지 13만3243㏊ 가운데 태양광 설비가 들어서면서 사라진 농지는 1만466㏊로 7.8%를 차지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농지가 사라진 주원인이 태양광발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선 지금까지 설치, 가동 중인 태양광발전 부지와 설비를 수십배 늘려가야 한다는 점이다.
농촌에 들어서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시설에 현지인들이 반감을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력 소비가 많지 않은 농촌이 전력을 많이 쓰는 도시의 에너지 공급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기도 하다. 농촌의 에너지 자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양광이었다면 태양광이 그리 큰 갈등의 요소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농촌은 농민 관점의 에너지 전환을, 도시는 좀 더 책임있는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자립을 꾀해야 한다. 도시의 지붕과 벽면, 도로 주변 유휴부지 등부터 태양광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도로와 철도의 유휴부지 활용에 에너지협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고, 발전사업자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참여 비율도 의무화해 지역에 혜택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해나갈 필요도 있다. 에너지 전환의 막힌 길을 뚫고 활력을 되찾기 위해 도로와 철도 등을 활용하는 일, 더 지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