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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5월 광주정신’ 다시 새기겠습니다

등록 2022-05-17 04:59수정 2022-05-17 07:33

광주시내를 장악하기 위해 도청으로 진입하는 계엄군의 탱크 행렬. 518기념재단
광주시내를 장악하기 위해 도청으로 진입하는 계엄군의 탱크 행렬. 518기념재단

[왜냐면] 안병욱ㅣ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1980년 5월, 80만 광주시민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 투쟁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42년 전의 위대한 영웅들을 경건히 기리고 추모하면서, 당신들이 남긴 숭고한 정신을 가슴에 새깁니다.

1980년 광주시민군은 성명서에서 “지금 광주에서는 제2의 군부 독재를 저지하기 위하여 젊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 이에 우리 광주시민 일동은 이 고장을 지키고 이 민족의 민주 혼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총을 들고 일어섰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너무나 무자비한 계엄군의 만행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너도나도 총을 들고 나선 것이라면서, 시민을 지키기 위한 시민군이라고 했습니다.

광주시민들은 비록 열흘간의 전투에서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이후 역사에서는 마침내 학살만행의 반란자들을 처단한 영광스러운 승리자입니다. 시민 앞에 살기등등하게 군림하던 자들이 국회 청문회장이나 재판정에 불려 나와 야비한 태도로 비굴한 변명을 늘어놓는 추악한 모습을 보면서, 역사의 엄정함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새삼 옷깃을 여미고 5월27일 전남도청에서 전개된 최후의 결사 항전에서 산화한 영웅들을 추모합니다. 당시 도청은 시민항쟁의 중심이었고 항쟁을 지도한 지도부가 있던 곳입니다. 하지만 소총 몇자루로 무장한 시민군들 힘으로는 장갑차를 내몰면서 자행하는 계엄군의 살육작전에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뒷날 증언에서 한 시민군은 “도청에 들어간 우리들이 모여 있으니까 돌아가신 윤상원 대변인이 오셔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는 ‘굳은 각오가 아니면 지금 상황을 헤쳐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굳은 각오와 결의가 없는 사람은 지금 나간다 해도 말리지 않겠습니다’라는 말로 다시 한번 다짐을 주었다”고 했습니다.(전남대생 천영진 증언)

이 증언처럼 도청 사수대원들은 목숨을 잃을 것이 너무도 확실하였지만 열사들은 말 그대로 결사 항전으로 최후의 순간에 생명마저 바치면서, 끝내 광주시민을 지켜내고, 민주주의를 살려내고, 이 나라의 주인들에게 폭압에 굴하지 않을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비록 당장의 전투에서는 무참히 패배할지라도 생명을 바쳐서라도 이 땅에 민주사회를 세우는 초석이 되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가슴을 저미는 숙연한 역사입니다.

광주의 숭고한 투쟁 정신은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계승되고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500만명의 6월항쟁과 1500만명의 촛불혁명으로도 미완의 민주화 상태입니다. 권력을 움켜쥐고 매 시기 역사를 파탄냈던 독재자들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축출되었지만, 특무대에서 중앙정보부 경호실 보안사 안기부 그리고 검찰로 이어지는 조폭적인 통치는 재현되고 있습니다.

반민주의 뿌리를 4·19 혁명으로도, 10·26으로도, 6월항쟁으로도, 촛불혁명으로도 아직 뽑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탱크나 장갑차보다 더 파괴적인 수구언론을 방치하고 용인한 때문입니다. 그들의 요설로 정의를 향한 투쟁정신은 무의미해지고, 이웃과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양보는 시대착오가 되었습니다. 신뢰보다는 불신이, 화해와 협력보다는 갈등과 대립이 우선시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당신들의 살신성인 정신을 더욱 절실히 갈구하는 까닭입니다. 광주의 이념과 정신으로 불굴의 투쟁이 필요합니다. 광주 5월의 위대한 영령들이여! 이 나라에 더 이상의 차별과 억압과 적대적 갈등이 없는, 민주 화해 대동의 세상이 되도록 굽어살피면서 이끌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18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열리는 5·18 민중항쟁 제42주년 서울기념식에서 낭독될 추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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