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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살아남아야 한다, 그게 이기는 거다

등록 2022-06-06 18:22수정 2022-06-07 02:38

남북경협경제인연합회 소속 기업인들이 2010년 남북경협 중단을 선언한 5·24 조치 12년째를 맞은 지난달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얼어 5.24조치의 해제와 소상공인 코로나19 손실보상 대상에 경협기업을 포함할 것 등을 촉구하고 있다. 또 이들은 코로나19 방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이 한국의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남북경협경제인연합회 소속 기업인들이 2010년 남북경협 중단을 선언한 5·24 조치 12년째를 맞은 지난달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얼어 5.24조치의 해제와 소상공인 코로나19 손실보상 대상에 경협기업을 포함할 것 등을 촉구하고 있다. 또 이들은 코로나19 방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이 한국의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영일 | 남북투자기업협의회 회장·효원물산 회장

지난 1991년 우리 회사는 일본산 티브이와 비디오 각 750대를 북한에 보내고, 북한산 냉동 명태 1000톤을 받았다. 남북 최초로 이뤄진 ‘물물교환 거래’였다. 하지만 당시 정부 쪽 미움을 산 탓인지 북한산 냉동 명태는 마산세관에서 6개월간 발이 묶였다. 그 때문에 10억원(현재 가치로 80억~100억원)가량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번엔 국내 품귀 상태로 부르는 게 값인 생명태에 도전했다. 1993년 통일부로부터 생명태 1000톤 반입을 허가받아, 1차로 500톤급 냉장운반선 2척에 얼음과 포장 상자를 잔뜩 채워 북한 청진항으로 보냈다. 그런데 “대우그룹 쪽이 선적을 막는다”는 북쪽의 다급한 연락이 왔다.

당시 국내 생명태 수입 쿼터양은 연간 1000톤이었다. 매출 50억~70억원(현 시세로 500억원 이상)이 예상되는 고수익 사업이었다. 당시 대우그룹은 정부 쪽에 “왜 효원물산에 전량 독점시켰냐”고 항의하는 한편, 북쪽엔 “효원물산에 생명태를 실어주면 남포공단은 포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우리에게 보낼 생명태를 가로채갔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조금 전 현대아산 쪽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윗사람 지시니 내일까지 나가라’고 합니다.” 2006년 10월 금강산에서 회사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황당했다. 우리 회사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1998년 11월부터 2006년까지 8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북한상품 개발, 판매 그리고 관광 활성화에 앞장섰다. 관광 초기보다 매출이 10배 이상 커지자 현대아산이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판매수수료로 매출의 40~50%를 챙겨가고도 말이다. 다음날 재고품과 판매시설, 상품포장기도 챙기지 못한 채 직원들만 쫓겨났다.

난 바보 대북사업가다. 지난 32년간 오로지 대북사업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고, 모든 것을 잃었다. 업체들 사이 음해, 대기업의 갑질과 횡포, 그리고 정부의 과도한 견제와 개입은 상상하지 못할 고통과 자금 손실을 안겨줬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왜? 서로 소통하며 미래를 설계해온 진정한 북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사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1990년 남쪽 기업 최초로 북한산 시멘트 5300톤을 반입한 것을 필두로, 이듬해엔 냉동 명태 1000톤과 영지버섯, 왕벌젖(로열젤리), 송홧가루 등 농수산물 교역을 시작했다. 1993년엔 북쪽 평양에 사무실을 냈고, 1998~1999년 나진·선봉 식품시설 재투자, 1998~2006년 금강산 관광, 2005년 해주 모래 사업, 2009년 해주 수양산 석재 개발 합의 등을 이어갔다. 1997년엔 북한 흙 105톤과 솔잎 6톤을 반입해 실향민께 나눠주기도 했다.

얼마 전 통일부를 찾았다. “효원물산은 뭐 하는 회사냐?”가 첫마디였다. 32년을 오직 대북사업에만 몰두한 남북경협 1세대 기업인에게 말이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대북제재인 ‘5·24 조치’로 피해를 본 경협기업들에 네차례 보상을 했다. 하지만 우리 회사를 포함해 남북교역과 위탁생산 위주 기업은 보상을 신청한 1028개 기업 중 900여곳이 보상을 받지 못했다. 5·24 조치 직전 2년간(2008~2010년) 실적만 정부가 인정한 탓이다.

윤석열 정부에 제안한다. 첫째, 지난 12년간 남북경협을 중단시킨 5·24 조치를 풀고, 개성 남북경협사무소를 원상 복구해 남북 업체들이 수시로 만날 수 있도록 허용하자. 둘째, ‘물물교환 방식의 상거래’를 시작해 900여곳 탈락기업인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주자. 셋째, 파주와 개성 접경지역에 북한의 500여곳 장마당과 남한의 시장을 잇는 ‘남북 직거래 장터’를 조성해 ‘자유시장 생활 공동체’를 출범시키자.

오늘도 난 내 가슴 울리는 ‘길가에 버려지다’(이규호 작)를 노래한다.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고, 없는 길을 뚫다, 길가에 버려진’ 힘없고 불쌍한 900여곳 탈락기업을 생각하며 말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게 이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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