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서독 외교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등록 2022-06-06 18:23수정 2022-06-07 02:38

미국 성조기와 중국 오성홍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성조기와 중국 오성홍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왜냐면] 백범흠 | 연세대 겸임교수·전 주프랑크푸르트 총영사

1989년 11월 견고한 베를린 장벽이, 몰려든 동베를린 시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이듬해인 1990년 초 서독이 경제난에 처한 소련에 원조를 제공하면서 동·서독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참가한 ‘2+4 회의’가 열렸다. 1990년 8월 말 통일조약이 체결되고, 9월 2+4 회의의 승인을 얻어 10월3일 ‘거짓말같이’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다.

국제정치학자들은 통독을 ‘동방정책’(Ostpolitik)의 승리라고 평한다. 그들 대부분은 ‘동방정책’은 ‘서방정책’(Westpolitik)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대륙세력 중·러와 해양세력 미·일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과 같이 대륙세력 러시아와 해양세력 미·영에 의해 에워싸인 ‘미텔 오이로파’(Mittel Europa, 유럽의 중심) 독일은 18세기 이후 외교·전쟁 가릴 것 없이 늘 서쪽 영·프 문제를 먼저 해결(서방정책)하고 난 다음 동쪽 러시아(소련)에 대응하는 정책(동방정책)을 취해왔다. 제2제국 시대의 비스마르크, 제3제국 시대의 히틀러, 서독 시기 아데나워와 브란트도 마찬가지다. 국경도시 풀다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어지는 ‘풀다 갭’을 통해 동독 주둔 50만 소련군 탱크 부대의 공격을 받을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최전방국가 서독은 군사안보적으로 매우 취약했다. 서독 외교는 서독이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서독 외교는 보수·진보와 관계없이 늘 ‘신중함’과 ‘일관성’을 기초로 미·영·프는 물론 소련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미텔 오이로파’ 독일에 비견해 ‘미텔 아지엔’(Mittel Asien, 아시아의 중심)에 있다. 이에 따라, 한국도 ‘신중함’과 ‘일관성’을 기초로 미·일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난 뒤에 중·북 문제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제조업 허브는 중국이다. 그리고 미·중 경제는 촘촘하게 얽혀 있다. 미국은 기술·금융 분야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중국을 통제해 탈동조화시키려 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 등 140개 이상 국가의 최대 교역국이다. 한국 등 제3국은 미국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가해질 제재는 물론, 중국을 멀리할 때 받게 될 불이익도 두려워한다. 미-중 갈등이 심화할수록 한국이 입게 될 피해는 커질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탈동조화할 경우 미국도 피해를 본다. 중국 리스크를 우려하는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중국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중국은 한국의 제1 교역상대국으로 한국 수출의 25%를 담당한다. 한국은 2차 전지 생산에 필요한 리튬과 코발트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한다.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이고, 수입액이 30% 이상에 달하는 제품 228개 중 중국 비중은 76%에 이른다. 경제와 안보는 ‘순망치한’ 관계이자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밀접한 관계’이다. 한-미 동맹 강화는 필요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취약한 한국이 생존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독처럼 ‘신중함’과 ‘일관성’을 기초로 미·일은 물론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