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우식 | 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장
매년 6월12일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정한 ‘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이다. 오죽하면 2002년 이날이 만들어졌을까.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 197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비롯해 1998년 국제노동기구 ‘노동자 기본권선언’을 통해 강제노동 금지와 아동노동 금지 등 협약을 채택했지만, 그 문제가 해소되지 않아서다. 그렇다면 상황이 계속 악화하기만 하는 것일까. 해결의 실마리를 글로벌 기업의 사례에서 찾아보자.
1996년 누추한 환경에서 어린아이가 축구공을 만드는 모습이 미국 잡지 <라이프>에 실렸다. 이 한장의 사진으로 촉발된 소비자들의 분노는 나이키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당시 나이키 최고경영자(CEO) 필 나이트는 “미성년자 노동을 근절시키고 해외 제조사도 미국의 엄격한 안전보건 기준을 충족하도록 관리하겠다”며 사회적책임(CSR)팀을 만들고 파타고니아, 월마트 등과 함께 공정노동협회(FLA)를 결성해 건강한 공급망 관리에 힘을 쏟았다. 이런 노력의 결과, 지금 나이키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엠에스시아이)의 이에스지(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급 A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일련의 국제사회 노력이나 나이키 사례는 이에스지의 사회(S) 부문과 맞닿는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EU)도 지속적이고 단계적으로 입법 강도를 높이는데, 기업의 비재무정보 공시와 공급망 실사 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대기업뿐 아니라 앞으로는 중소기업도 이에스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비재무정보 공시 의무는 유럽연합 1만1700여 대기업에 적용됐으나, 2021년 공표된 기업의 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으로 그 대상이 모든 대기업과 상장 중소기업 등 4만9000여개로 대폭 확대됐다. 공급망 실사 제도는 글로벌 공급망 가치 사슬에 포함된 모든 기업이 이에스지를 고려한 비즈니스를 하도록 점검하고 관리하는 것이라 하겠다.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이러한 규제는 중소기업도 이에스지 경영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이에스지 경영 현주소는 어떤가. 2021년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90%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이에스지 경영에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중소기업이 영세성, 낮은 생산성, 빈약한 지배구조 등으로 스스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에는 벅찬 게 현실이란 얘기다. 그런데 대기업의 약 78%, 해외 기업의 22%가량이 중소기업에 이에스지 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탄소중립이나 공급망 내 지속가능성, 중대재해처벌법 등은 중소기업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은 물론 대기업도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이 이에스지 경영을 정립할 수 있도록 조력자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중소기업 스스로 특성에 맞는 이에스지 추진체계를 수립하도록 정부나 대기업이 뒷받침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을 지원하고 실천 과제를 발굴해 다가올 규제에 대비토록 도와줘야 한다. 다음으로, 영역별 이에스지 실행 방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이키의 경우 ‘리더십 표준 규정’을 통해 생산 협력업체들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잘 실천하도록 교육과 현장 점검 등을 병행하고 있다. 이 규정에는 적극적인 활용, 지속가능성, 안전, 근로자 존중, 공평한 대우 등 5대 주요 영역과 51개 운영원칙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이에스지 금융 지원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금융의 역할과 맞물려 금융사들은 여신 및 투자 의사 결정을 위한 프로세스에 이에스지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이에스지 금융 지원은 금융사의 사회적 책임과도 같은 궤적에 놓여 있다.
국제사회는 기업에 환경보호를 강조하고 사회적 가치를 높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또한, 그 중요성을 간과한 기업에는 각종 규제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제한한다. 지금까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해온 이에스지는 앞으로 기업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로 그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중소기업도 이러한 사업 환경을 직시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자신들의 핵심 역량에 기초한 이에스지 경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