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 스틸컷.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왜냐면] 정은주 | <그렇게 가족이 된다> 저자
“목사님, 아기와 함께 죽으려고 약을 타 놨어요. 상담을 해봐도 입양 보낼 여건이 안 돼요. 부모님과 학교가 알게 되면 제 인생은 끝나요!”
서울 난곡동 한 교회 베이비박스에 전화를 건 어린 미혼모는 절규했다. 2009년 설치된 이후 베이비박스에는 이런 절박한 목소리가 수없이 전해졌다. 전에 그곳을 취재한 적이 있어 계속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지난 2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의 시사회에 참석했다. 한국의 베이비박스를 소재로 한 영화라 기대감이 있던 터였다.
그러나 엔딩자막이 올라갈 때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것 같았다. 미혼모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의 아픔을 잘 대변해준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베이비박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뤄주길 바랐던 내 기대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영화 속에서 베이비박스는 범죄의 빌미가 되는 단순 소재로 등장해, 그야말로 ‘정체불명의 상자’로 전락하고 만다. 실제 베이비박스에서는 아기가 들어오는 순간 벨이 울리고 근무자들 중 한 사람이 아기를 구조한다. 동시에 또 한 사람은 뛰어나가 아기를 두고 간 사람을 찾는다.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베이비박스는 극도로 예민한 주제였다. ‘애초에 이런 장소가 있으니 아기가 유기된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베이비박스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브로커> 대사 속에도 이와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 한국의 베이비박스는 사회가 외면한 미혼부모의 응급 구조, 미성년자 출산, 장애아 양육 등 어느 하나도 가볍지 않은 이슈들이 한꺼번에 밀집된 현장이다. 그러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겠다며 또 다른 소외의 현장을 외면했다.
지금껏 일부 전문가들도 베이비박스는 아동 유기를 조장하여 미혼모의 자립 기회를 뺏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소방관이 있어서 불이 나고, 형사가 있어서 범죄가 생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베이비박스는 단순 유기 현장이 아니다. 운영자들은 돌아서는 보호자의 발길을 붙잡아 상담하고 양육 지원을 한다. 제대로 된 비판을 하고 싶다면, 단 며칠이라도 베이비박스 앞에 머물러보라.
미혼부모의 삶을 생생히 풀어낸 미디어의 모델은 없을까? 현재 방영되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티브이엔)는 고등학생들이 낙태 아닌 출산을 택했을 때, 공동체 속에서 어떤 과정을 겪는지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들을 사회 속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면 기존의 편견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낱낱이 증언한다.
그러나 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이 드라마 속에서 낙태를 고민하던 여학생이 임신부를 선포하는 순간 ‘캐릭터 붕괴’를 펼쳤다고 비판했다. 함께 고민하는 남학생에 대해서는 대책 없이 ‘내 아이’를 꿈꾸는 맹랑한 소년이라고도 했다.(
<한겨레> 2022년 4월30일치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중) 나는 그의 글 속에서 묘하게도 미혼부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미혼부는 도망가고 미혼모만 남아 낙태를 선택하는 이야기로부터, 조금이라도 다른 쪽으로 확장되면 맹랑하다는 말이 난무하는 현실 사회의 시선 말이다. 이제는 좀더 열린 시각으로 미혼부모와 베이비박스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