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9일 오전 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조사 결과 기자간담회 도중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왜냐면] 이수호 | 해양공학박사·국제표준화기구 조선분과 전문위원
놀랍고 기가 막힌 일이다. 세월호는 뭍으로 올라왔지만 시간은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던 2014년 4월16일에 멈춰 있다. 명쾌한 사고 원인 조사는 흔들리고 있고,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을 위한 입법화는 아직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조사와 관련해 정부는 한시적 정부기관(장관급)인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2015.03.05.~2016.09.30),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2017.03.29~2018.08.06),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2018.12.11~2022.06.10)를 운영하였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세월호 사고 원인에 대한 내부적 이견으로 진통 끝에 지난 10일 최종보고서를 내고 활동을 종료했다. 앞서 사참위 전원위원회는 “(세월호 침몰 발생의) 외력 가능성을 조사했지만 증명하지 못했고, 외력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한다”는 종합결론을 내는 것을 전제로 진상규명국의 조사결과보고서 채택을 수정 의결했다.
마지막까지 아쉬운 대목이다. 조사 초기에는 주변 상황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들여다봐야 하지만, 결론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에 기반해 기술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관계가 전제돼야 하는 사고조사보고서에 ‘신의 부존재를 증명하지 못했기에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와 같은 궤변적 결론을 쓰는 것은 기만이다.
사고 현장이나 조사 과정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각종 조사와 수사 결과 등을 종합하면 세월호 사고의 주된 원인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고정밸러스트인 물을 덜어내고 그만큼 화물을 과적함으로써 선박의 무게중심이 올라간 것
②적재화물의 고박 불량
③선박 침몰 과정에서 승객 대피를 위한 선내 대응시스템 부재
솔레노이드밸브 고장이든, 급격한 변침이든, 잠수함과 같은 외부로부터의 충격이든, 정상적으로 설계 및 건조돼 운항 중인 배는 웬만한 충격이 있더라도 세월호처럼 순식간에 균형을 잃지 않는다. 조사위원회는 지엽적 시각에 갇혀 논점을 흐림으로써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정부가 민간과 함께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한 이유는 원인을 찾아 대책을 강구함으로써 그와 같은 대형 사회적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조사위원회는 원인에 따른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해 보고서에 담고, 이를 입법부에 제안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활동을 종료한 사참위는 원인 조사 결과에 따른 대응 방안 수립 활동은 하지 않았다. 조사 과정에서 부차적 검토 사안인 잠수함 충돌설과 같은 음모론이 등장했고, 여기에 휘둘리다 결국 배가 산으로 가는 결론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조선학회와 네덜란드 해양연구소(MARIN)에 의뢰해 외인설의 근거가 없다고 각각 통보받았지만, 사참위 조사국에서는 외인설 가능성을 삭제할 수 없다며 전원위원회와 대립했다. 출범 초기부터 외인설로 시작된 갈등이 3년 반 동안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결론 도출에 실패하였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사참위 인적 구성에서 선박사고 및 선박안전, 해양환경 전문가를 찾을 수 없었고 운영에 있어서도 전문성이 떨어졌다는 비판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사참위에 참여한 개개인들로서는 최선을 다했겠지만, 오케스트라와 같은 전체적인 거시 및 미시적 균형이 잡히질 않았고 목소리 큰 사람에게 휘둘린 셈이 됐다. 사참위 활동 과정에서 전문가집단의 소외, 전문가 공개토론회 부재 등도 많이 아쉽다.
세월호에 관한 국민들 관심은 서서히 낮아져가고 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찾고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사고 이후 8년이 지난 지금도 혼선이 여전하다. 게다가 입법으로 연결될 대응 방안 도출을 요구하기에는 지금까지 정리된 내용들이 초라하다.
앞으로 더 이상 사참위 같은 거대 조직을 구성해 원인 조사나 대응 방안 수립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참위 활동은 이제 끝나지만, 이를 바탕으로 사고방지대책을 입법화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다. 이제 그 일은 정부와 국회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