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난민 어린이를 상징하는 3.5m 높이의 대형 인형 ‘리틀 아말’이 시민들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다. 시리아 난민 어린이 구호를 위해 제작된 이 인형은 이제 전 세계 난민 어린이의 상징으로 통한다. 르비우/AFP 연합뉴스
[왜냐면] 김동주 | 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장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거의 2년 만의 첫 해외출장,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는 적당한 햇빛과 때때로 부는 바람이 한국의 어떤 가을날처럼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살던 곳을 떠나온 난민들이 하루하루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도 했다.
월드비전에서 일한 지난 10여년 동안 세계 곳곳의 재난 현장에서, 참 다양한 상황에 부닥친 난민들을 만났다. 시리아, 남수단, 그리고 여기 루마니아까지 내전과 분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사람들, 그리고 영문을 모른 채 부모를 따라 길을 나서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된 아이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그들의 바람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길, 행복한 기억이 있었던 내 집에서 다시 가족이 함께 모여 평안한 일상을 보내며 살 수 있길 바란다.
감사하게도 이번 우크라이나 위기에 지구촌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이 뜨겁다. 월드비전은 전세계 많은 후원자와 기업들이 보내온 도움의 손길 덕분에 난민들에게 필요한 식량과 물품, 아동들을 위한 교육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피란민들에게까지 장기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관심과 지원이 그동안 발생한 다른 많은 인도주의적 위기의 청사진이 되길 희망한다. 국적이나 지역을 떠나 난민과 그 자녀들이 겪는 슬픔과 고통은 경중을 판단할 수 없이 누구에게나 치명적이고, 모든 생명은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관심, 이들을 돕는 자원의 불균형으로 더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삶이 더 외면받고 잊혀간다.
11년째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 1300만명 넘는 사람들이 인도적 위기 상황에 부닥쳤다. 그중 절반은 다른 국가로 피난을 가고, 나머지 절반은 국내 실향민이 됐다. 10년 넘는 전쟁으로 ‘잃어버린 세대’라 불리는 아이들은 학교 교육이 중단된데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조혼을 포함한 아동학대, 강제노동 위기에 놓였다.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몇년 계속된 최악의 가뭄과 경제·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체 인구의 95%가 먹을 음식을 충분하게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한국 인구의 약 절반 정도인 2400만명이 인도적 지원의 손길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약 1500만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데 그중 500만명이 아동이다. 우리는 잊고 있지만, 지금도 전세계 곳곳에서 매일 크고 작은 무력분쟁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등 불안정한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월드비전이 ‘세계 난민의 날’(6월20일)을 앞두고 발표한 글로벌 보고서를 보면, 지난 2년 동안 세계 11개국 난민들, 그중에서도 아동들의 삶이 심각하게 악화했다. 시리아·남수단 등지에서 온 난민들과 국내 실향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2%가 식량·의료서비스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의 3분의 1 이상(35%)은 성장기에 있는 아동들이 지난 12개월 동안 체중이 줄었다고 답했다. 가장 취약한 아동들의 삶이 더욱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크라이나 위기에 관심이 쏠린 사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른 지역 난민들은 외면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관심과 지원만큼, 다른 지역 난민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그들의 목소리에도 잊지 말고 귀 기울여보자. 72년 전, 한반도의 작은 나라의 전쟁고아들을 위해 기꺼이 도움을 전했던 그 손길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