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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디아지오코리아의 노동자 토사구팽과 그 방관자들

등록 2022-06-21 05:00수정 2022-06-21 08:32

지난 2월25일 서울 여의도 아이에프시(IFC)몰 앞에서 열린 디아지오코리아노동조합 총파업 출정식. 디아지오코리아노조 제공
지난 2월25일 서울 여의도 아이에프시(IFC)몰 앞에서 열린 디아지오코리아노동조합 총파업 출정식. 디아지오코리아노조 제공

[왜냐면] 김민수 디아지오코리아 노조위원장

디아지오라는 회사가 있다. 이름이 낯설겠지만 시가총액은 100조원, 연 매출액은 20조원, 영업이익은 10조원이 넘는 세계적인 초우량 주류회사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니 워커’, ‘윈저’ 같은 양주와 맥주 ‘기네스’ 등으로 유명하다. 코로나19로 국내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도 디아지오의 한국 법인인 디아지오코리아는 2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달성했고, 매년 배당금으로 수백억원을 글로벌 주주들에게 송금했다.

직원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고, 성과도 확실했다. 그런데 지난 3월25일, 디아지오 본사가 수십년째 알짜배기 흑자 기업인 디아지오코리아를 공중분해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디아지오코리아 매출의 55%가량을 차지하는 W시리즈를 포함한 윈저 브랜드는 자기자본금도 없이 인수대금 모두를 외부에서 차입한 사모펀드(베이사이드PE)로 완전히 넘기고, 디아지오 글로벌 브랜드인 조니워커·기네스 등은 신설 법인을 설립해 영업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노동자들과는 단 한차례도 상의가 없었다. 완벽하게 토사구팽 당한 노동자들은 일터를 지키기 위해 오늘까지 135일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는 악랄했다. 대형 법무법인에 거액의 비용을 들인 자문을 바탕으로 야비하고 불법적인 방법을 서슴지 않았다. 노조가 파업하면서 공장을 비운 사이 직접생산 공정에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했다. 지역 영업소 지점장 등 본사 소속 비조합원을 파견해 공장을 대신 돌리고 공정 등에서 발생한 기기 고장은 외부용역을 통해 해결했다. 해당 사건은 고용노동부가 조사해 위법성을 인정하고 지난 4월29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지만, 현재 보강 수사를 이유로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계류된 채 허송세월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디아지오코리아는 7월이면 신설 법인으로 분할 뒤 남은 법인을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공중분해가 진행된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될지도 모르는 벼랑끝 처지에 놓였다.

우리나라 국세청도 디아지오코리아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데 한몫했다. 국세청은 오랫동안 가짜 위스키 불법 거래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 위스키 시장 유통 과정을 전자칩에 담아 언제든 그 과정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무선주파수인식기술(RFID) 태그 방식이 도입됐다. 수입 위스키를 국내에 팔기 위해선 병뚜껑에 아르에프아이디 태그를 부착해야 하는데, 이 태그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게 캡실이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디아지오코리아는 ‘플라스틱 저감, 친환경 정책의 일환’이라는 거짓말로 캡실 없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캡실 없는 제품이 시장에 유통되면 유통 과정에서 아르에프아이디 태그가 손상돼 국세청이 심혈을 기울였던 가짜 위스키 불법 거래유통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세청은 현재의 디아지오코리아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신설 법인 ‘디아지오코리아’에 또다시 주류 판매 면허를 허가했다.

아마도 디아지오코리아 대표이사는 한국을 매우 좋아할 것이다. 수사기관은 외국 먹튀자본이 불법을 자행해도 묵인해주고, 대형 로펌만 섭외하면 모든 법망을 피해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노동조합은 외국 자본의 먹튀와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행태에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대형 로펌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법치국가이며, 대한민국의 관계당국이 자국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가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디아지오코리아노조가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하나금융투자 빌딩 앞에서 윈저 브랜드 졸속 매각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디아지오코리아노조 제공
디아지오코리아노조가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하나금융투자 빌딩 앞에서 윈저 브랜드 졸속 매각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디아지오코리아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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