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가동이 정지된 프랑스 아르덴 지역의 쇼즈 원전.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누벨-아키텐 지역 시보 원전의 비상 냉각시스템에서 결함이 발견되자 같은 설계로 지어진 쇼즈 원전도 안전을 위한 예방적 조처로 가동을 정지시켰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 56기중 12기가 비슷한 결함 조사를 위해 정지된 상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왜냐면] 석광훈 |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프랑스 원자력안전청은 지난해 한 원전에서 비상용 원자로 냉각수 공급 배관에서 부식 균열이 발견된 뒤 최근 정밀 검사를 위해 유사한 원전들을 무려 12기나 가동을 중단시켰다. 이들 대부분은 설비 교체도 필요해, 연말까지 재가동이 어렵다. 게다가 프랑스 검찰은 프랑스전력공사에 대해 원전 안전 관련 문서위조, 보고 의무 위반 및 상해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이는 수명 연장이 진행 중인 트리카스탱 원전에서 원자로 출력 급상승, 침수 사고 은폐, 독성 물질 방류, 안전 검사 업무방해가 있었다는 내부 제보에 따른 조치다. 지난 1월 프랑스 전기위원회가 전기요금 원가가 45%나 인상되었다고 발표한 상황에서도 원전 안전 문제에 비타협적으로 대처하는 모양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국제 에너지 공급난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이라며 원전 이용률을 높여 요금을 억제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낮은 원전 이용률은 다수 원전에서 방사능 재난 때 방벽 역할을 하는 콘크리트 격납 건물에 구멍과 철판 부식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가동이 중단되었기 때문인데, 어떻게 높인다는 것인지 의도가 궁금하다.
정부가 가동을 촉구하는 신한울 1·2호기의 계측제어시스템(MMIS)과 수소제거장치(PAR)도 문제다. 계측제어시스템은 원전 운전 상태를 감시 제어하는 핵심 설비이지만, 지난 2012년 입찰 비리와 시험성적서 위조에 가담했던 업체들이 개발에 참여한 뒤 최근까지 성능 시험에서 문제를 일으키며 가동을 무려 5년이나 지연시킨 주범이다. 수소제거장치는 후쿠시마 사고에서 부각된 수소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 업체가 개발했으나, 세 차례 성능 시험에서 오히려 불꽃과 화염만 일으켜 ‘수소폭발 점화기냐’는 탄식이 나온다.
지난 5년간 문제를 일으켜온 이 설비들이 정권이 바뀌니 갑자기 환골탈태라도 했을까? 이런 상황에서 윤 정부의 ‘원전 이용률 타령’은 결국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안전에 구멍 난 원전들을 무리해서라도 가동하라는 압박이나 다름없다.
한술 더 떠 검찰은 월성 1호기 폐쇄 결정에 관여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에 대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했다’며 수사를 벌여 기소까지 했다. 마치 안전 문제와 안전 비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이미 과거 법원은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을 허가한 원안위의 결정에 대해 최신 기술 기준 미적용을 이유로 행정 취소 판결을 한 바 있다.
더욱이 월성 1호기는 박근혜 정부 당시 무리한 여과배기설비(CFVS) 공사로 인해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설비가 파손되어, 그 후 10년간 오염된 냉각수의 지하수 유출이 방치되어왔다. 당시 원안위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지만 수명 연장을 허가한 것이다. 이런 내막은 원안위 산하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 담당자가 내부 문제 제기 끝에 지난해 언론에 폭로하면서 알려졌으나, 그는 인사 불이익만 받았고 원안위는 민간조사단의 조사도 방해한 한국수력원자력을 묵인해주며 빨리 잊히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그간 국내 원자력계가 ‘원전강국’이라며 추켜세워온 프랑스의 원자력안전청과 검찰이라면, 국내의 이런 사태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정치권의 “원전 정쟁”에 합류해 칼을 휘둘러온 검찰은 자신들이 원전 안전에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깊이 숙고하기 바란다. 또 정부는 국제 에너지난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그간 밝혀왔듯이 전력시장 개선에 집중하되, 이를 안전성에 구멍이 난 원전들로 해결하려는 모험을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