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 23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 대학 총장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교육부 제공
[왜냐면] 박기범 |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 대학의 인력 양성이 산업계의 수요와 괴리되어 이루어졌고, 배출 인력의 질적 수준이 낮으며….”
우리 정부가 1999년에 작성한 ‘산업기술인력 수급 효율화 대책’ 가운데 한 부분이다. 기업이 원하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는 지난 20여년뿐 아니라 아마도 기업이라는 체제가 사라질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가능하면 더 많은 역량을 지닌 인력, 동일한 역량이 있다면 더 낮은 임금의 근로자를 끝없이 원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급성장하는 반도체 분야 인력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정원 확대, 규제 폐지 등 “특단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첨단산업 분야의 인력 부족은 분명한 사실이고 대학 교육을 통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곧바로 갖추기에 부족한 것도 현실로 보인다. 진단은 제대로 됐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수도권 정원 확대와 규제 폐지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대학 정원은 학과가 아닌 학교 단위로 정해져 있고 의약학과 사범계열 이외 과별 정원은 대학이 자율로 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과의 정원 확대는 다른 과의 축소를 의미하므로 특정 분야의 신설 또는 정원 확대는 대학 내에서 쉽게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서 총량 규제를 받지 않는 계약학과(맞춤형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이 기업 등과 계약해 설치·운영하는 학과)의 확대, 나아가 총량 규제 자체를 풀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인력 수급의 원리와 대학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우리나라 비수도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매우 위험한 시도다.
우선, 인력은 수요에 따라 즉시 공급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양성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환경도 변하기에, 당장의 수요에 따라 인력을 양성해 공급하려는 정책은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더 컸다. 반도체 분야 성장 상황이 바뀌었을 때, 현재 늘어난 관련학과 정원을 다시 조정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정 분야 정원 확대는 고스란히 수도권 대학 전체 정원의 확대라는 결과만 남길 것이다.
둘째, 대학이 사회적 수요를 무시해선 안 되지만 기업 요구대로 사람을 찍어내는 곳은 더욱 아니다. 반도체는 특정 학과가 아니라 물리학과, 화학과, 전기공학과, 전자공학과, 재료공학과, 기계공학과, 전산학과 등 수많은 이공계 학과의 지식이 결합된 분야다. 따라서 ‘계약학과’라는 제한된 커리큘럼을 통해 양성되는 인력은 반도체 분야의 미래를 책임질 전문인력이 아니라 특정 기업이 현업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역량만을 갖춘 인력일 수밖에 없다.
셋째,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정책 개입 없이 시장원리를 적용한다면 지방대학은 10년 내 불과 20~30개 정도만 남고 전멸할 것이다. 지방대학은 수도권과 동일한 비율로 감축하기를 원하지만 입시에서 인기 높은 수도권 대형 사립대학이 이에 동의할 리 없다. 정원 문제는 대학들의 합의로 해결될 수 없으며, 지금껏 모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꺼리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당장 2024년 정원 대비 입학생 10만명 부족이 예정돼 있고, 2040년 무렵에는 이공계 대학생이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이제는 정말 뼈를 깎는 수준의 “특단의 노력”이 불가피해졌다.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교육부도 경제부처처럼 생각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부처가 경제부처처럼 생각하더라도 교육부처와 복지부처는 그래서는 안 된다. 기업은 생존이 걸렸다면 필요한 인력을 어떻게든 확보해왔으며, 필요하다면 기존 인력을 재교육해 대체할 수도 있다. 지금껏 수많은 기업이 명멸을 거듭해왔지만 일할 사람이 없어서 망한 기업의 사례는 들어본 일 없다. 그러나 대학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줄어드는 인구에 거슬러 입학생을 확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캠퍼스 절반을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계약학과 운영이 가능하지 않은 중소기업은 물론 세계적인 수준의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대학이 공급해주기를 바라고, 산업인력의 원활한 공급은 정부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대학의 취업교육기관화, 그리고 지방대학 몰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진행해야 할 과제인지는 다시 한번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