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30일 경기도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이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왜냐면] 오희택 | 경실련 시민안전위원회 위원장
‘공정과 상식’을 내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두달이 흘렀다. 최근 언론에서는 심상찮게 현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언급되고 있는데, 혹여나 국민 눈높이를 벗어난 이윤추구 행위마저 보호하고 나서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분류되지만, 그에 무색하게도 여전히 가짜, 불량자재로 인한 후진국형 대형 화재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2020년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 이후, 마침내 건축자재 안전 성능을 강화하고 품질관리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건축법이 마련돼 1년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12월23일부터 시행 중이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시행일로부터 5개월여가 지난 뒤에야 관련 하위법령과 세부지침을 발표하더니, 이미 개정된 시험방법과 기준을 완화해 가연성 심재(우레탄, 스티로폼 등)가 1년간 더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난연성능 시험 시 용융·수축 기준도 완화했다. 또한 회사마다 제품 성능과 재질 등에서 차이가 있는 만큼 각각 품질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2회 시험만으로 표준모델로 지정되면 누구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법 취지를 완전히 무력화하는 행위다.
복합자재(샌드위치 패널)의 경우는, 기존 성적서가 모두 만료되는 올해 12월까지 새로운 인정서 취득이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시험방법과 절차 등 세부사항이 확정되지 않아 인정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아직 단 한건의 인정서도 발급하지 못했다. 시험방법과 절차 등은 왜 확정하지 못했을까. 화재에 취약한 우레탄, 스티로폼 등의 소재로 제품을 생산하는 업계의 항의 때문이다. 이로 인해 12월까지 모든 인정 수요를 소화하기는 어렵고, 자칫 성능에 적합한 자재가 있어도 인정서가 없어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6월에 성적서가 만료된 업체들은 현재 인정서가 없어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 화재참사 당시 화재 안전 성능 기준을 강화하자는 주장에 숨죽이고 있던 우레탄, 스티로폼 등 업계에서는 자신들의 요구로 관련 기준이 완화되자 지난 4월, 5월 두차례에 걸쳐 품질인증제도 철회 및 유예를 주장하는 시위까지 열었다. 기술개발에 나서 기준을 충족시키는 새 제품을 생산하는 대신 기존 제품 생산을 고집하며,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과 제도를 유예·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토부가 심재 화재 안전 기준을 20% 완화하고 표준모델을 따르면 시험인증도 없이 제품을 팔 수 있도록, 기존 안전 기준보다 후퇴한 정책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기업 성장은 일자리 창출과 국가성장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기업의 무조건적인 이윤추구 논리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또다시 위협받는다면 후진국형 대형 참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관련 업계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는 아랑곳없이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도 넘는 발목잡기와 법체계의 무력화 시도를 멈추고 업계 스스로 검증받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국토부는 더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입법 취지에 따른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원칙에 따른 세밀하고 정교한 후속 조치로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한다.
국민은 권력의 힘이나 반칙이 아닌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한다. 특히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결코 타협과 절충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