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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엉터리 관 세척공사 조장하는 환경부 고시 개정해야

등록 2022-07-13 18:09수정 2022-07-14 02:37

2019년 11월2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일원에서 실시된 ‘상수도관 질소세척' 토출 모습. 먹는물대책소비자연대 제공
2019년 11월2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일원에서 실시된 ‘상수도관 질소세척' 토출 모습. 먹는물대책소비자연대 제공

[왜냐면] 이민세 | 먹는물대책소비자연대 대표·전 영남이공대 교수

인천 서구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 사태를 계기로 ‘상수도관망시설 유지관리업무 세부기준(2021.2.26.)’이 마련돼 10년 주기로 상수도관 세척이 의무화됐다. 이에 따라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관 세척공사를 하고 있는데, 정작 세척 기준이 ‘이물질 제거’에 맞춰져 있지 않고 ‘먹는 물 수질기준’으로 돼 있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와 6개 광역시, 제주시, 세종시의 상수도 관련 기관 및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상하수도협회로 구성된 상수도공동연구협의회는 지난해 대한상하수도학회에 의뢰해 ‘상수도관망 세척 효과분석 및 세척 성능평가 지표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상수도관망 상태에 따른 상수도관망 세척 매뉴얼’과 ‘상수도관망 세척 성능평가 매뉴얼’을 펴냈다. 그런데 ‘상수도관망 세척 성능평가 매뉴얼’의 실효성이 의심되고 있다. ‘관 세척 공법별 특징’을 설명하면서(24쪽) 비교 항목을 너무 협소하게 제시하고, 공법별 ‘이물질 제거 효과’에 관한 내용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잘못은 환경부에 있다. 환경부 고시(제2021-43호, 2021.2.26.) ‘상수도관망시설 유지관리업무 세부기준’ 제5조(관 세척 시행) ④항은 “관 세척은 세척구간을 통수할 때 탁도(0.5NTU 이하)와 잔류염소(0.1 ㎎/L 이상 4.0 ㎎/L 이하) 기준을 만족하면 종료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기준이 ‘먹는 물 수질기준’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현재 전국 지자체 대부분의 수돗물이 그 기준을 충족하고 있기에, 이런 규정은 기존 상수도관을 세척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관 세척 기준을 만들며 ‘이물질 제거’가 아니라 ‘먹는 물 수질기준’을 적용하니 세척 효과 측정이나 점검이 왜 필요하겠는가.

고시 내용과 매뉴얼이 허술한데다, 지자체마다 자율로 관 세척공사를 하고 있다 보니 현장에서는 부실한 세척공사와 관련한 다른 여러 뒷말도 나오고 있다. 시작 단계인 공법 선정부터 잡음이 적지 않다.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 집행기준’(제1장 제1절 10-가)은 물품, 용역, 공사 중 2개 이상이 혼재된 계약을 발주하는 경우 계약담당자는 사업 계획단계부터 분할 발주 여부를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다수 지자체는 이를 잘 지키지 않고 있다.

세척 공법 선정 입찰 신청 자료로 제출하는 제안서에 건설공사에서나 필요한 ‘하자보증기간’을 적도록 하는가 하면, 수십억원 규모 세척공사를 도모하면서 정작 공개 시연 없이 세척업체가 임의로 작성한 제안서만 놓고 심사하는 공법 선정 과정도 문제가 많다. 심지어 최근 대구시 등은 입찰공고 때 지역제한을 걸어 폭넓은 경쟁 자체를 막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척공사가 주로 한밤에 이뤄져 제대로 세척됐는지 아무런 검증 과정이 없어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표준시방서 ‘상수도 기존 관의 세척 및 갱생공사 일반사항’에서 세척공사는 ‘상수도관로 내부에 침전물 또는 슬라임, 녹 또는 경질의 부식생성물 등을 완전히 제거하여 수질 개선을 도모하는 것’으로 정의가 돼 있다. 관 세척은 관 내부 이물질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당연한 말이다. 환경부도 서둘러 ‘관 세척 종료 기준'을 ‘관 내부의 이물질이 완전히 제거됐을 때’로 바꿔야 한다. 아울러 감리인 제도를 도입해 세척 전후 내시경 검사를 수행하는 이에 엄중한 권한과 책임을 주고, 통수 기준도 짧은 시간(예 10분)을 충족하는지를 살피도록 해야 한다.

이런 상식적인 조치들이 있어야 우리 국민의 수돗물 직접 음용률(현 5%)도 상승곡선을 탈 수 있지 않겠나. 현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감사원이 지난해부터 실시된 관 세척공사들 전반에 관한 감사에 착수해 구조적 문제점들을 확인하고 그 해결책들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

이민세 먹는물대책소비자연대 대표가 ‘상수도관 질소세척'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 먹는물대책소비자연대 제공
이민세 먹는물대책소비자연대 대표가 ‘상수도관 질소세척'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 먹는물대책소비자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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