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태근 | 농업회사법인 흙살림 회장
1997년 ‘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된 이래 친환경 농업은 많은 부침이 있었다. 이 가운데서도 친환경 인증 농가(유기인증, 무농약인증 농가 기준)는 2012년 10만7천호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어들어 현재는 5만5천호 수준에 그친다. 2015년 완전 폐지된 ‘저농약 인증'을 논외로 하더라도 최근 10년 사이 인증 농가는 45% 감소했다.
친환경 농업을 하다 보면 친환경 농산물에서도 농약이 검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의적인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주변 농가가 살포한 농약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거나 예기치 못한 폭우에 따른 침수 피해 등 의도치 않은 요인에 의한 오염인 경우가 많다. 불가항력적인 원인 때문이라 하더라도 인증기준에 부적합한 사항이 발생한다면 1차 책임은 재배 농민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심사를 해 인증을 내주고 사후관리 의무가 있는 인증기관에 2차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이들 인증기관을 관리하는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은 친환경 인증기준 위반 농산물과 관련해 난데없이 취급자에게 연대 책임을 묻고 있다. 취급자란 친환경 인증 농산물을 수매하고 재포장해 판매하는 유통사업자를 말한다. 인증 위반 농산물이 나오면 해당 농산물을 재배한 생산자뿐만 아니라, 이를 취급한 유통사업자에게도 경고하고 나아가 취급자 인증 취소까지 할 수 있다. “취급자 인증을 받은 유통사업자가 생산농가의 생산 농산물에 대해 관리하고 책임지라”는 취지라고 한다. 취급자는 농가로부터 인증서류를 받고 현장 답사나 농민과의 면담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의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인증기관’처럼 농가를 조사하고 관리할 권한이나 책임을 가진 것은 아니다.
취급자로서는 인증, 즉 정부의 보증을 믿고 유통했는데 인증 위반 농산물이 발생하면 미판매 잔량을 회수·폐기해야 하고, 거래처로부터 매입 취소를 당하고, 무엇보다 상거래상의 핵심 가치인 ‘신뢰'에 타격을 입는다. 정부의 인증을 믿고 유통하다 문제가 발생했는데, 인증관리 책임자인 정부는 쏙 빠지고 피해자이기도 한 취급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판이다.
불가항력적인 원인에 의한 농약 검출은 농가에 시정할 기회를 줘야 하고, 그런데도 반복된다면 해당 필지를 제외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농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요인으로 발생한 인증기준 위반까지 취급자가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면 결과적으로 친환경 농업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친환경 농산물을 많이 취급할수록, 수매 대상 인증농가가 많아질수록 유통사업자는 취급자 인증이 취소될 위험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소규모 인증농가나 인증경력이 짧은 농가는 최대한 배제하고, 규모가 있고 오랜 고정거래 농가와만 거래하게 된다.
친환경농어업법의 공식 명칭은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이름에 ‘육성과 지원’이 있다. 그런데 법 제정 취지와 반대로 친환경 농업을 오히려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법이 운용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잡아야 한다. 10년 만에 친환경 인증 농가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 안타까운 현실을 냉정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