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공공병원설립 대구시민행동’은 지난달 28일 홍준표 대구시장직 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2대구의료원 건립을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왜냐면] 김동은 ㅣ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확보할 수 있는 병상 수는 환자의 증가세를 따라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입원 대기 중에 목숨을 잃은 분들이 연일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구가 코로나19 1차 대유행으로 의료붕괴 위기를 맞았던 2020년 2월 말 권영진 시장이 정례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2천명 넘는 확진자가 입원할 병실을 찾지 못했고, 80명 넘는 중환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송됐다. 대구지역 4만개가량 병상 가운데 바로 동원이 가능한 공공병원 병상은 대구의료원 442병상이 전부였다. 대구의료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자, 이번엔 평소 공공병원을 이용하던 취약계층이 찾아갈 병원이 없어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런
‘의료 공백’을 경험한 시민들의 ‘제2대구의료원 설립’ 요구는 정당했다. 처음에는 미온적이었던 권영진 시장도 ‘2027년까지 제2대구의료원을 설립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런데 7월1일 취임한 홍준표 시장이 시민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제2대구의료원 설립은 시정 ‘50대 과제’에서 제외됐고, 시장직 인수위원회는 ‘기존 대구의료원을 강화하고 제2대구의료원은 추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존 대구의료원 강화와 제2대구의료원 설립은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과제다. 게다가 제2대구의료원 설립은 사실상 시민들 숙의과정을 거쳐 결론이 내려졌다. 시민 10명 중 7명이 찬성했고, 외부 전문기관 설립 타당성 연구용역에서도 400~500병상 규모 공공병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추후 검토’가 아니라 국고 지원 등을 위해 홍 시장이 열심히 뛸 때란 얘기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홍 시장은 ‘대구에 대학병원이 많다’며 공공병원 설립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그러나 대학병원 개수가 바로 위기 대응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급증했던 지난해 정부가 병상 동원령을 내렸지만, 상급종합병원 문턱은 높기만 했다. 결국 서울의료원 마당에 컨테이너병상까지 설치해야 했다. 전체 병상의 10%에도 못 미치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70~80%를 감당했다. 병상을 동원하며 정부가 지급한 4조원 넘는 손실보상비는 약 90%가 민간병원으로 흘러갔다. 공공병원을 10개 이상 설립할 수 있는 돈이다. 위기 때마다 민간병원에 읍소할 게 아니라 의료안전망 역할을 하는 공공병원을 더 세워야 한다.
홍 시장은 ‘의료보호(급여) 환자는 대학병원에 가도 무료’, ‘공공병원이라고 수가가 더 싸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상급종합병원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의료급여 환자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 노숙인에게 연대보증인이나 지불보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 민간병원보다 공공병원의 진료비 부담이 적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과잉 진료가 아닌 적정 진료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대구지역 26개 종합병원을 분석한 결과, 대구의료원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가장 높았다. 환자 부담이 가장 적다는 뜻이다.
2025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 우리 사회의 의료비 폭등이 큰 걱정인데, 적정 진료를 하는 공공병원이 ‘의료비 앙등의 제어판’ 역할을 할 수 있다. ‘표준 진료’를 제시하며 민간병원을 견인할 수도 있다. 다만 공공병원 비중이 어느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다.
홍 시장은 법적으로 영리병원이 허용되지 않는다며 “대한민국 의료는 모두 공공의료”라고 말했다. 이는 궤변에 가깝다. 투자자에게 이익을 배분하는 ‘주식회사 병원’(영리병원)은 없지만, 동네 의원에서 종합병원까지 모두가 영리를 추구한다. 의료공공성은 의료서비스 공급과 재정의 공공성으로 평가되는데, 우리나라 전체 병상의 90%가 민간 소유다. 건강보험과 정부 지출을 합한 공공재원 비중 역시 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71%보다 낮다. 그나마 건강보험이 최소한의 의료공공성을 담보하지만 보장률이 약 65%에 그친다. “한국 의료제도가 미국보다 더 시장적이다”라는 하버드 보건대학원 윌리엄 샤오 교수의 진단에 홍 시장이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더 짧은 주기의 새로운 감염병 대유행이 예고된다. 이런 때 ‘공공의료 강화’를 통해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시장의 책무는 없다. 홍 시장이 ‘역주행’을 멈춰야 하는 이유다. 공공의료에 지워지지 않을 생채기를 남기는 일은 진주의료원 강제 폐원 하나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