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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수술할 의사 있냐?’는 질문 들어야하는 권역외상센터의 현실

등록 2022-08-29 18:18수정 2022-08-30 02:37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왜냐면] 문윤수 |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

“무거운 철 구조물에 몸통 부위를 부딪친 60대 환자입니다. 혈압도 낮고 극심한 흉복부 통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119 구급대원의 사전 연락을 받고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환자를 맞았다. 환자는 너무 심한 통증에 신음만 간신히 낼 뿐 제대로 말도 못했다. 낮은 혈압과 심한 통증의 원인은 복부 대장 천공과 십이지장 손상, 간 손상. 가슴에도 다발성 늑골 골절과 폐 타박상이 있다. 굵은 정맥관을 삽입하고 혈액과 수액을 주입해 혈압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장 천공과 출혈 부위 수술이 남았다. 수술 전 상태 설명과 수술동의서 서명을 위해서는 보호자가 있어야 했다. 다행히 급하게 연락받고 달려온 아들이 막 병원에 도착했다. 아버지의 심한 손상 상태를 대략 설명하고 ‘수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이 되물었다.

“우리 아버지 수술할 외과의사 선생님이 지금 병원에 있나요?”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순간 의아했지만, 지난주 사건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형 병원에서 발생한, 뇌출혈 환자를 수술할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타 병원으로 전원해 수술했지만 안타깝게도 환자가 숨진 사건이다.

“제가 집도합니다. 외과의사인 제가 집도하고 환자 주치의입니다.” 이 한마디에 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동의서에 믿음을 담아 또박또박 서명했다.

권역외상센터는 환자 내원 즉시 해당 분야 전문의들이 직접 진료한다. 초기 처치, 수술 결정과 중환자실 치료까지 신속하게 이뤄진다. 이번에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사고였지만 권역외상센터와 20여분 거리에서 사고가 발생해 바로 이송된 게 불행 중 다행이다. 신속한 권역외상센터로 이송 및 초기 처치, 빠른 수술, 믿음을 담은 아들 서명까지 더해져서 환자는 잘 회복했다.

주어만 바뀔 뿐 먹지로 대고 쓴 것처럼 똑같이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계속 나온다. 지금 이 시각 어디선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이슈화돼야 언론과 정치권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뇌출혈 환자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19일 보건복지부 새 정부 업무계획 보고가 있었다. 급하게 끼워 맞춰 넣은 것으로 보이는 대책이라고 발표한 자료에는 ‘국민의 생명 보호를 위한 필수의료 확대’라는 거창한 제목만 눈에 띈다. 대책이라야 지원, 강화, 보강, 도입이라는 책상 위에서 쓴 굵은 글씨들이 전부다. 이번에 또 목소리 높여 발표한 대책도 수년 전 대책을 먹지로 대고 옮겨 쓴 것일 뿐이다.

매년 외과, 응급실로 실습 나온 의대생 후배들을 만난다. 해가 지날수록 의사가 될 후배들이 의대에 입학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업 선택, 경쟁사회에서 자녀들을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려는 부모들 의지가 의대에 온 이유다. 어느 후배 하나 스스로 히포크라테스 선서, 생명존엄 같은 거창한 단어를 대며 의대를 선택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인턴 수련과정 뒤 전공의 지원 결과를 보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강조하는 소위 필수의료 과목들의 전공의 지원율은 처참한 수준이다.

복부 심한 출혈, 장기 손상으로 응급수술을 마무리한 오늘 새벽, 한 생명을 살렸다는 안도감으로 스스로 뿌듯했다. 그러나 이내 수술처방을 입력하면서 이 새벽에 수술한 수술 수가 수십만원이라는 숫자를 보며 자괴감에 빠진다. 응급실부터 수술실, 마취과까지 열댓명 의료진, 의사, 간호사가 함께 처치, 수술했으나 수술 수가가 이것밖에 안 된다니 허탈할 뿐이다. 사람 목숨을 돈에 댈 수는 없으나 짧은 시간 동안 미용수술하고 받는 비용과 피를 뒤집어쓰고 몇시간 수술한 수가가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개탄스럽다.

의대 십수년 후배인 졸업반 학생이 외상외과에 관심을 보였다. 이 후배가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된 뒤 지금의 나처럼 남들 자는 시간에 수술하고 환자 살리는 일을 선택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미지수다. 후배가 인턴을 마치고 전공과목을 결정할 때 생명 살리는 보람만으로 외과 전공의 과정을 자신 있게 선택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충분한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관심, 정부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해진다면 그 후배는 또 다른 외상외과 의사가 돼 권역외상센터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권역외상센터는 살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가져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환자를 한명이라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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