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에 비가 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왜냐면] 김진유 |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지난달 서울지역 집중호우로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과거 여러차례 반지하 참사가 반복되었음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해 결국 비극이 또 일어난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을 순차적으로 줄여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반지하 주택 신축을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도 10~20년에 걸쳐 없앤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계획이 현실성 없다고 비판한다. 서울에서 20만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으니 주택공급 여건을 고려할 때 과연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더구나 반지하와 지상 주거지 사이 월세 차이를 고려하면, 서울시가 제시한 20만원 주거비 보조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반지하를 없애면 현재 거주자 중 대부분은 서울 외곽으로 밀려날 게 뻔하다는 주장이다.
런던이나 뉴욕에도 아직 반지하 주거가 남아 있는 만큼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필요한 약이라도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면 금지해야 하듯이, 반지하 주거가 시민 목숨을 위협한다면 없애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직장에서 조금 멀어지더라도, 집이 좀 좁아지더라도 그렇다. 어떤 것도 ‘안전한 주거’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현재 반지하에 사는 20만가구는 서울시내 한 자치구 가구 수에 맞먹는 엄청난 규모다. 목표를 20년으로 잡아도 매년 저렴한 주택 1만호를 추가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최근 5년 평균 서울시에서 순수하게 증가한 주택 수는 연간 4만호 안팎이고, 공공임대는 연 2만호 정도임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목표다. 어렵사리 공급목표를 달성한다 해도 주거비라는 산을 또 넘어야 한다. 1848년 ‘공중위생법’을 제정하면서 신축 시 지하주거시설 금지(67조)를 천명했던 영국이 아직 지하 주거지를 100% 없애지 못한 것도 바로 주거비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시도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시급성 정도에 따라 아주 취약한 반지하와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해 단계별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번에 침수 피해를 본 지역을 중심으로 공공임대 우선 입주, 지상주거 이주비 지원 등 실효성 있는 단기대책을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는 가을이라고 오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반지하 중에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우는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산층을 위한 장기전세나 토지임대부 공급에 앞서 영구임대나 전세임대와 같은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를 대폭 확대할 필요도 있다.
때마침 진행 중인 서울시의 정비사업 활성화 정책과 연계하면 반지하를 줄여나가는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공공재개발, 모아타운만 해도 1만3천호의 반지하가 포함돼 있고 기존 재개발 사업구역까지 더하면 수만호의 반지하 주택이 정비사업을 통해 사라질 예정이다. 따라서 재해에 취약한 저지대부터 노후주거지 정비를 신속히 추진해 기존 반지하 주택을 조속히 제거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통해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면 속도감 있게 정리할 수 있다. 과감한 정책 전환과 뚝심 있는 실행력, 지속 가능한 관리체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