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사회주의자 서훈’ 논란 어떻게 봐야 하나: 김명시 선생의 경우

등록 2022-09-07 18:36수정 2022-09-08 02:07

김명시(1907~1949)의 모습. 김형선, 김명시, 김형윤 삼남매는 어려운 집안에서 자라 사회주의 운동에 온몸을 바쳤다. 휴머니스트 제공
김명시(1907~1949)의 모습. 김형선, 김명시, 김형윤 삼남매는 어려운 집안에서 자라 사회주의 운동에 온몸을 바쳤다. 휴머니스트 제공

[왜냐면] 김대원 | 숭실대 객원교수·전 국가보훈처 대변인

대한민국 독립유공자의 서훈 범위와 대상은 국민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넓혀져 왔다.

특히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다. 박헌영, 김단야 등과 함께 ‘고려공산청년회’를 조직했던 임원근에게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3년 건국훈장이 추서됐고,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했던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은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7년 추서됐다. 신한청년당을 발기, 3·1운동의 촉매 역할을 하고 해방 직후 ‘건준’(건국준비위원회)을 조직했던 몽양 여운형도 권오설, 김단야, 조동호, 김재봉 등과 함께 해방되고 무려 60년이 지난 2005년 3·1절에야 추서됐다.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계열 독립운동이 있었지만 그동안 민족주의 독립운동가에게만 포상이 이뤄져 왔다”고 말했다.

올해 광복절에 서훈된 독립유공자 김명시의 벽화가 최근 훼손되는가 하면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서훈에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명시는 누구인가. 해방 직후 <독립신보>는 그를 ‘백마 탄 여장군’이라고 일컬었으며, <신천지>는 1946년 3월호에 ‘팔로군에 종군했던 김명시 여장군의 반생기’를 게재했다. <동아일보>도 1945년 12월23일치에서 ‘조선의 잔 다르크 현대의 부랑(夫娘), 연안서 온 김명시 여장군 담(談)’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김명시 선생이 1949년 사망 당시 경찰 발표대로 북로당 정치위원이었느냐로 보인다. 서훈 추진 단체는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한 사람들을 모아둔 신미리 애국열사릉 명단에 김 장군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고, 국가보훈처도 ‘북로당 정치위원이었다는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훈 여부는 학자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 위원회에서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심사를 통해 이뤄진다. 현재 심사기준은 사회주의 계열이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 서훈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참고로 북한은 우리의 현충원 격인 애국열사릉에 김규식, 정인보 선생 등 대한민국 정부가 이미 서훈했거나 북한 정권 수립에 관련 없는 납북 인사들의 유해까지 안치하고 있다. 체제의 정통성을 과시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우금치에서 일본 제국군과 전투를 벌였던 ‘2차 동학혁명군’들과 대한제국 귀족 중 유일하게 상하이 임시정부에 몸담은 동농 김가진 선생,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장재성 선생 등의 서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심사기준도 달라진다. 훗날 국민적 동의가 이뤄진다면 6·25 남침을 소련, 중국과 기획하고 주도한 김일성, 박헌영, 허정숙 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독립운동가 서훈 여부도 신중하게 검토할 날이 올 수 있다. 특히 남북에서 모두 버림받고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간 남로당계 독립운동가들이 그렇다.

1945년 8월14일 시점에, 한반도와 세계 곳곳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맞섰던 좌우의 독립운동가 중, 해방된 조국이 장차 분단되고 급기야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본 사람이 단 한분이라도 있었을까. 따라서 독립유공자 선정은 해당 인물이 일제에 맞서 싸웠느냐 여부에 따라서만 결정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는다. 제외 사유도 뒷날 친일로 변절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그게 우리 후손들의 의무이며 독립지사들이 그토록 원했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선진국, 대한민국의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사적 정통성을 더욱 넓히는 길이자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역대 정부가 뚜벅뚜벅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도 다르지 않을 것이며, 지금보다 한걸음 더 앞으로 내딛길 기대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