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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평등법 제정은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급행열차

등록 2022-09-19 18:40수정 2022-09-20 02:08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등 관계자들이 지난 5월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등 관계자들이 지난 5월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염형국 |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때로 정도가 지나치면 혐오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훈수 두는 어른을 ‘꼰×’라 칭하고, 노인을 ‘틀×’이라 비하하며, 말씀이 많은 할머니를 ‘할××’라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세대의 단절을 넘어 노인에 대한 편견을 만들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책 제목처럼 ‘말이 칼이 되는’ 경우입니다.

이주민 혐오도 심각합니다. 인터넷에서 이주민 기사가 뜨면 “너네 나라로 꺼져”라는 막말이 쏟아집니다. 2021년 국가인권위가 시정 권고했던 대구 이슬람 사원 신축공사 중지 건은 동네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아직까지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혐오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2017년 인권위는 “서울 ○○구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반대는 평등권 침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당시 장애아동 부모들이 무릎까지 꿇으며 교육권 보장을 요청했지만, 지역주민들은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규정했습니다. 최근 수년 동안 혐오의 대상은 여성, 성소수자, 아동, 정치인, 특정 지역 거주민 등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혐오의 시작은 편견입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이 쌓여 혐오로 표출됩니다. 혐오표현이 퍼지면 사회적 차별행위로 이어지고, 이는 증오범죄를 유발합니다. 그래서 혐오와 차별은 ‘함께 잘사는 나라’의 걸림돌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라는 국정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6대 국정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과제엔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을 통한 차별 없는 사회 실현’,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 구현’,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및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 ‘청년에게 공정한 도약의 기회 보장’ 등 세부 과제가 포함돼 있습니다. 차별금지와 평등사회를 향한 올바른 방향 설정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인권위에서 차별시정업무를 담당합니다. 수많은 차별 진정사건을 조사하고 시정 권고를 합니다. 그런데 인권위 출범 21년이 된 시점에도 유사한 사건이 사람과 장소만 바뀐 채 계속 들어옵니다. 구조적 차별을 시급히 개선하지 않으면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1대 국회엔 현재 4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돼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하지만 지난 5월 반쪽짜리 공청회를 개최한 이래 본격적인 법안 심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야 모두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안에 관한 논의를 미루고 있습니다.

인권위가 지난 4월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 실현을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7.2%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국민 3명 중 2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부 종교인 등의 반대를 우려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100%의 지지로 통과되는 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인권선진국들도 평등법 제정 당시 일부의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정부와 국회가 국민의 뜻을 존중했습니다. 국민의 상당수가 원하면 일단 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논의 과정에서 반대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인권 측면에서 여러번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해자에게 초과 지급된 배상금의 지연이자 10억원을 면제해줬고, 제주 4·3사건 피해자 재심을 일반재판 수형인까지 확대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군인권보호관 제도를 시행한 것도 현 정부의 성과입니다.

과거엔 선진국의 척도가 경제였지만 지금은 인권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준과 국격에 비추어볼 때 평등법 제정은 시대적 소명입니다. 윤석열 정부와 21대 국회가 평등법 제정을 통해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급행열차에 올라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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