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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 무조건 면죄부?…‘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오해와 왜곡

등록 2022-09-21 18:25수정 2022-09-22 02:39

민변, 참여연대 등 노동·종교·법률·시민단체 대표와 회원들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운동본부' 출법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 3권을 무력화하는 손배 가압류 금지와 하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민변, 참여연대 등 노동·종교·법률·시민단체 대표와 회원들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운동본부' 출법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 3권을 무력화하는 손배 가압류 금지와 하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왜냐면] 송영섭 | 손잡고 법제도개선위원·변호사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불법행위에 무조건 면죄부를 주자는 법이다.”

노란봉투법에 반대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얘기다. 이는 노란봉투법이 만들어지면 불법파업이 만연해질 것이라는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불법행위를 면책하자는 게 아니다. 불법행위가 아닌 쟁의행위에까지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가 남발되니, 불법행위가 아닌 쟁의행위에는 손배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일 뿐이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은 근로조건과 관련된 분쟁이라는 점에서 단체행동권 행사일 뿐 불법행위가 아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그렇다. 권리분쟁을 노동쟁의에 포함하는 노조법 2조 개정도 마찬가지다. 1997년 노조법 개악으로 별다른 근거 없이 권리분쟁이 제외됐는데, 다시 정리해고와 권리분쟁에 쟁의행위가 가능하도록 규정하자는 것이다.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준다기보다는, 불법행위가 아니었던 원래대로 원상회복시키자는 얘기다.

현행 노조법 제3조는 면책 대상을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국한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을 기준으로 쟁의행위 면책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다. 노동3권은 법률의 제정으로 실현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하는 구체적 권리이기 때문이다.(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전원합의체 판결)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를 면책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당연한 귀결일 뿐, 노조법에서 가타부타 규정할 일이 아니다. 실제 1953년 3월 노동쟁의조정법 제정 때도 면책 대상을 ‘쟁의행위에 의한 손해’라고 규정했을 뿐 ‘이 법에 의한’이라는 대목은 없었다. 5·16쿠데타 이후 1963년 노동법 개악으로 ‘이 법에 의한’이라는 제한 문구가 들어왔다. 면책의 범위를 법률로써 제한하도록 한 것은 헌법 위반이기에 삭제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불법 쟁의행위에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불법 쟁의행위 때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입법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어느 쪽이 유례가 없는 것인지 차근차근 따져보자.

영국은 노동조합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원고 1인당 청구액 상한선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조합원 수 5천명 이하는 6천만원까지, 5천~2만5천명은 3억원까지, 2만5천~10만명은 7억5천만원까지, 10만명 이상인 경우 15억원까지 청구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100명 남짓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470억원을 청구했다. 수년 동안 30% 삭감된 임금을 원상회복해달라면서 쟁의행위를 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한푼도 안 쓰고 200년을 일해도 못 갚을 수준의 거액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과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자는 노란봉투법, 둘 중 어느 쪽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인가.

프랑스에서는 감원, 기업구조 개편, 사업장 이전 등 사용자의 경영상 결정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손해배상 청구가 인정되지 않는다. 파업의 시기, 자발성 유무, 범위, 기간, 장소 등은 중요하지 않으며 조정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고 공공서비스 분야를 제외하고 사전통지도 필요 없다. 파업은 교섭의 결렬을 전제로 하지 않고 최후수단의 원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 파업 참가자가 행한 폭행, 감금 등 위법한 행위와 파업권의 남용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손해배상 청구는 인정되지 않는다. 구조조정 등 경영상 결정에 반대하는 것도 직업적 이익의 옹호에 해당한다고 봐 파업의 정당성을 부정하지 않는 프랑스와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섰던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노조와 노동자들에게 수십억원 규모 손해배상 책임을 물은 대한민국 중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은 어느 쪽인가.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손배가압류가 노동조합의 단결을 저해하고,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질곡으로 몰아넣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양산함으로써 산업 평화를 깨트리는 등 더는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야만의 시대를 가속할 것인가, 노란봉투법을 통해 인간의 얼굴을 지닌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갈 것인가. 손배가압류 오남용을 억제해 노동자를 살리는 법, 노란봉투법은 이번에 꼭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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