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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학생 저임 노동자 300만인데…초중등 ‘노동’교육 삭제?

등록 2022-09-28 18:21수정 2022-09-29 02:36

우리 대학생의 약 80%는 알바노동을 경험하면서 대학생활을 보낸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대학생의 약 80%는 알바노동을 경험하면서 대학생활을 보낸다.  게티이미지뱅크

[왜냐면] 노중기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새 정부 출범 뒤 넉달이 지났으나 장관이 없는 교육부는 지금 갈팡질팡 오리무중이다. 특히 얼마 전에는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에서 ‘노동’을 삭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학교부터노동교육운동본부’ 등 교육계와 시민사회 그리고 노동계의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으나 교육부는 ‘나몰라라’다. 정권이 바뀌자 교육부는 오래전에 이뤄진 사회적 합의를 파기했다. 노동인권교육이 절실한 우리 현실을 다시금 외면한 반교육적 행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노동교육을 받지 못한 채 대학생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학에서 40년 이상 생활한 필자에게는 매우 놀라운 일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해가 바뀔수록 학생들이 더욱더 열심히 공부한다는 점이다. 선배들은 물론 심지어 교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바삐 생활하는 학생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기쁘기보다 안타깝다. 아니 슬플 지경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학생들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알바노동자로 일하는 탓에서 비롯된 일종의 착시효과이기 때문이다.

방과후나 주말 알바노동자로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학업에 충실한 것은 매우 좋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편의점 밤샘 알바 뒤 아침부터 강의 때 조는 학생이 많아진 것을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조건에서 ‘(알바)노동하는 대학생’인지 ‘공부하는 (알바)노동자’인지가 도무지 헷갈리는 지경이라면 문제 아니겠나. 나아가 입시경쟁보다 더 치열한 취업전쟁에 내몰린 학생들의 살아남기 전략이 알바노동과 학점경쟁으로 나타났다면 그것은 더 큰 비극이다.

이런 고민은 필자가 대학생 노동인권교육을 10년 이상 진행해온 경험과 닿아 있었다. ‘노동과 인간’, ‘노동의 의미’라는 3학점짜리 교양과목 2개는 필자가 대학생의 대학생활, 특히 노동생활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다.

우리 대학생의 약 80%는 알바노동을 경험하면서 대학생활을 보낸다. 대부분 편의점이나 카페, 그리고 식당 등에서 서비스노동자로 일한다. 노동조건은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을 받고 때로는 그 이하의 불법적 저임금을 받기도 한다. 근로계약서 작성 없이 일하거나 주휴수당이나 초과수당 등 법정수당을 떼이는 사례는 흔하다. 심지어는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폭력과 성추행, 성희롱에 시달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고된다.

더 중요하고, 놀라운 문제는 이것이었다. 대부분이 이런 알바노동 경험을 매우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이었다. 많은 학생이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카페와 식당에서 일하는 시간을 더 의미 있거나 재미있다고 말했다. 여러 친구와 ‘좋고 나쁜 사장’을 만났고, 미리 직업생활과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필자는 강의시간에 이런 대학생 노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비판적인 질문을 줄곧 던져왔다. 300만이 넘는 학생 저임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공급되는 것은 결국 장시간저임금 노동체제를 뒷받침하는 사회구조적 요인이라는 지적이었다. 즉 한국 자본주의, 곧 재벌체제는 대학생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착취함으로써 재생산된다고 강조해서 말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치열한 노동시장 경쟁, 학생 개인에게 전가되는 비싼 교육비, 경쟁만능주의의 상품사회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압박을 한 학기 강의로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또 이 현실을 학생 개인의 힘으로 극복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기성세대의 갑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우리 학생들의 평가는 놀라웠다. 수강생들은 매일 자신이 부딪히고 있는 벽의 실체를 희미하게나마 처음으로 실감하는 듯했다. 대다수는 노동교육이 지금 학생에게 절실히 필요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교양교육이라는 뜨거운 반응을 보여줬다. 이런 반응에 힘입어 대학생 노동인권교육은 지금 경기도와 민주노총의 지원으로 도내 13개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다. 내년에는 20개 대학으로 확대하고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계획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지금이야말로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말의 무게를 성찰해야 할 때이다. 노동인권교육은 비정규직 알바노동에 시달리는 우리 학생들에게 당장 절실한 문제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그것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나아가 대학교육을 정상화해 지식기반사회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교육정책을 바꾸는 어리석음을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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