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청사.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왜냐면] 승효상 |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2020년 충북 청주시 통합청사 건립을 위한 국제설계경기 당선작이 발표됐을 때, 나는 두가지 점에서 한국의 현대건축을 한걸음 더 나가게 한 일이라며 기뻐했다.
첫째는, 설계경기의 전 과정이 말끔하게 진행된 점인데, 이는 말 많고 탈 많기 쉬운 설계경기 전체를 노심초사하며 총괄한 청주시 총괄건축가의 굳은 의지와 이를 뒷받침한 행정의 결과였다. 이런 선진적인 시스템을 애써 강조하고 소개해오다 탈진한 바 있던 나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하나는, 제시된 조건이 기존의 오래된 청사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운 건축을 덧대어 역사의 길이를 한껏 늘인 점이었다. 이는 준비 과정에서 도출된 여러 주장들이 논쟁하고 조정된 결과여서 건축유산에 대해 한껏 성숙해진 우리의 의식에 찬사를 보냈다. 이런 좋은 기회에 참여할 수 없었던 내 현실을 탓하며, 당선안이 실현되면 우리 시대에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으리라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내 귀를 의심하는 발표를 듣고 말았다. 새로운 시장 체제가 등장한 다음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에서 기존에 투입된 비용과 시간을 감수하면서도 이 통합청사 건립계획 전체를 뒤엎겠다고 했다는 것. 기존 계획이 비용이 많이 들고 기능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를 대며 옛 청사 존치 계획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오래된 건축을 허물고 그 자리에 하나의 새 건물을 세워야 한다니…. 이들에게는 기존 건물이 꼴 보기 싫은 유산이었던 셈이다.
1975년 유럽의회는 오랜 논의 끝에 ‘건축유산에 관한 유럽헌장’을 발표한 바 있다. 그 내용 다섯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건축유산은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기념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우리 마을의 덜 중요한 건물군과 그들의 자연적 혹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특징적인 마을도 포함한다.
둘째, 건축유산 속에 각인된 과거는 균형 잡히고 완전한 삶을 위한 절대 필요한 환경을 제공한다.
셋째, 건축유산은 필수불가결한 정신적·문화적·사회적·경제적 가치의 자산이다.
넷째, 역사적 중심지구와 필지 구조는 우리의 삶을 조화로운 사회적 균형에 이르게 한다.
다섯째, 건축유산은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진다.
간단히 말하면, 건축유산 즉 오래된 건물은 우리가 온전한 삶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자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많은 건축유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새로운 현대의 유적들로 더욱 풍요로운 문화 속에 누리는 그들의 온전한 삶의 행복이 몹시 부러워, 시간과 돈을 들여 견문까지 가는 우리였다.
새 역사 창조라는 공허한 구호를 외치며 개발 광풍을 불러 우리의 아름다운 강토를 짓이겨 놓은 야만의 시대를 이제 극복할 때가 됐고, 많은 이들의 선한 노력으로 이미 여러 희망적인 소식들도 듣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다시 돌출한 이 퇴행의 현장은 그 희망이 아직 머나먼 미래의 일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키고 말았다.
나는 건축에서 가장 좋은 재료는 시간이라고 말해왔다. 별 볼 일 없는 건물도 오래도록 우리 주변에 머물 때 결국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그 건축의 형태로 인한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이루어진 우리 삶의 향기가 두터워져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짐작할 수도 있음을 안다. 그래서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라고까지 한다.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숙고해서 만든 기존 설계를 버리고, 오래된 역사의 청사를 허물고 백지 위에 새로 짓겠다는 그 새로운 발표가 부디 취소되길 바란다. 만약에 그대로 실현된다면 또 하나의 반문화적 역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