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1일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 씨제이대한통운본부 조합원들이 점거농성중인 서울 중구 씨제이대한통운 본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노란봉투법’ 릴레이 기고 4 |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
택배기사는 보통의 근로자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한다. 그러나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수탁계약서를 작성하고 급료나 임금이 아닌 수수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택배사들과 정부는 택배기사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한다. 근로자가 아니기에 퇴직금도 호봉도 없다. 지난해 타결된 사회적 합의에 따라 4대 보험 가운데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고 택배사가 보험료를 부담하게 됐지만,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여전히 가입 대상이 아니다.
택배기사들은 별다른 역할이 없는 대리점에 15% 가까운 수수료를 떼이고, 부가세라며 10%를 떼이고, 기름값도, 차량 관리비도, 식대도 모두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무엇보다 과중한 노동시간, 열악한 터미널 환경, 허술한 폭염·혹한 대책, 임금인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교섭을 할 수가 없다. 주 40시간, 주 52시간이라는 근로시간 제한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주 6일, 주 60시간 근무가 일반적이다. 그나마 사회적 합의 이전 주 72시간에서 많이 줄어든 결과다. 휴가는 물론 반차, 월차도 없고, 경조사 휴가도 거의 없다. 쉬고 싶으면 하루 20만~30만원에 달하는 용차비를 감당해야 한다. 터미널은 원청 소유이나, 교섭은 대리점과 해야 한다. 대리점은 “우리는 들어줄 능력이 없다”고, 원청은 “우리는 교섭 당사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택배 현장의 시스템은 코로나에 따른 택배물량 급증이라는 문제를 만나 결국 붕괴했다. 2020~21년 택배기사 22명이 과로로 사망한 것이다. 결국 택배사들은 분노한 여론에 의해 공론장으로 끌려 나왔고, 붕괴한 시스템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재구축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택배사 사장은 자신이 진짜 사장임을 부인하고 있다. 지난 2월10일, 택배노조가 씨제이(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했다. 지난해 연말 파업에 돌입했으나, 45일 넘도록 협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진짜 사장인 원청과 대화해야 하는데 “계약관계가 아니다”라며 대화를 거부하니 점거와 같은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원청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이들이 불법으로 본사를 점거했다”며 제기한 20억원 손해배상소송이었다.
노조법 2조가 개정된다면, 앞으로 택배사 원청은 파업 전부터 노조와 협상하고, 정상적인 택배 현장 운영을 위해 노동자들과 협력하게 될 것이다. 점거농성 같은,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을 찾고, 그 원인에 책임 있는 이들이 나서야 한다. 노동자에게 노동자 대우를 해주고, 책임과 권한이 있는 진짜 사장이 교섭에 나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단순한 진리다. 사회적 합의로 택배기사가 택배 분류작업에서 배제되자, 거짓말처럼 과로사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택배사 원청, 진짜 사장이 사회적 대화에 나와 결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책임져야 할 이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조직, 사회, 국가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단적으로 올해 우리나라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5명이라는 참혹한 통계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진짜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노조법 2조 개정은 그저 특수고용노동자들 처우 개선이 아닌, 우리 사회를 구하는 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