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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각자도생 세상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민들의 연대

등록 2022-10-19 18:58수정 2022-10-20 02:36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지난 3월24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지난 3월24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50주년 특별기고_①연대와 행동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 한국지부 사무처장

2022년을 사는 우리는 연대보다 각자도생을 더 많이 이야기합니다. 2019년 한 인터넷 취업정보사이트의 설문조사에서도 한국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사자성어로 ‘각자도생’이 꼽혔다고 합니다. 분절된 관계 속에서 스스로 노력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겠죠. 설상가상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전세계는 봉쇄에 들어갔고, 사람들이 마주 보며 풀어가던 일들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전환됐습니다. 소수자 집단을 향해 혐오가 표출됐고, 방역을 이유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도 제한받았습니다. “백신 정의”를 요구한 여러 뜻있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부자 나라에서는 백신이 남아돌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갈수록 엄혹해지는 듯한 현실이지만, 인권이 후퇴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대와 행동’을 지향하는 국제앰네스티는 세계 각국 회원, 지지자들과 함께 의미 있는 인권의 승리를 끌어냈습니다. 1991년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한 뒤 옛 유고슬라비아연방 국민 2만6천여명이 거주 허가와 보건 및 사회적 혜택을 박탈당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슬로베니아는 이들의 인권침해 사실을 알리고 책임자들의 사과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왔고, 30여년 만인 올해 초 슬로베니아 대통령이 마침내 공식 사과했습니다. 올해 초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강압통치를 비판했다가 체포, 구금됐던 파이줄라 잘랄 카불대 교수 석방운동에 나섰고, 잘랄 교수는 며칠 만에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길게는 수십년, 수세기가 걸리기도 하는 정부나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현실에 비춰 봤을 때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분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들에게 가해진 인권침해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지난해 2월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평화적인 시위대에 살상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군부가 외부세계와 소통을 차단하자 현지 위성방송사 ‘버마 민주화 소리’가 국제사회에 연대를 호소했고, 미얀마 시민들을 침묵 속에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지지의 메시지들이 한국으로부터 쇄도했습니다. 지난 3월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달을 맞아 국제앰네스티 15개국 지부 회원들이 동시다발로 공동액션에 나섰는데, 한국에서도 5천여명이 러시아의 책임을 묻는 탄원에 서명하고 100여명이 러시아대사관 앞에 모여 정의를 요구했습니다. 최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들은 이란에서 ‘강제 히잡 착용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뒤 석연치 않게 숨진 마흐사 아미니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대와 연대하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61년 전 신문 칼럼을 읽고 인권침해에 분노한 시민들이 연대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꾸려진 국제인권기구입니다. 시민들의 연대는 고문방지협약, 무기거래조약 등 인권조약에 큰 영향을 미쳤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양심수들을 석방하도록 했습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지부의 회원들도 전세계 1천만명 이상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연대해 여러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은 학생건강체력평가로 바뀌었지만,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윗몸일으키기, 멀리뛰기, 100m 달리기, 던지기, 매달리기 등을 통해 체력을 측정하는 ‘체력장’이란 게 있어 입시에 반영됐습니다. 이들 종목에서 일정 점수를 얻으면 마지막 오래달리기 종목을 면제받지만, 체력이 약한 저는 기준 점수에 미달해 오래달리기를 해야 했습니다. 운동장에 홀로 남아 뙤약볕 아래서 달려야 하는 제 처지가 싫었고 완주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미 기준 점수를 채운 친구들 몇몇이 남아 저를 에워싸고 함께 뛴 것입니다. 제 삶에서 첫 연대의 기억입니다.

30여년 전 운동장에서 저와 함께 뛰어준 친구들처럼, 국제앰네스티는 앞으로도 모두의 인권을 위해 함께 달려나갈 것입니다. 그 길에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세계 최대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50주년을 맞아 ‘모두의 인권, 미래로 가는 용기’란 열쇳말 아래 50년 역사를 되돌아보고 향후 인권운동 방향을 살펴보는 네차례 연쇄 기고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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