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배동산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장
공공기관은 정부부문(중앙 및 지방정부)과 함께 국민의 삶과 국가경제 유지 발전에 꼭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기준 중앙정부 산하 350개 공공기관의 자산 규모는 969조원으로 정부 총자산의 78%를 차지했고, 예산은 751조원으로 정부 예산의 1.24배였다. 그만큼 공공기관이 국민 삶과 국가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한데, 많은 국민은 공공기관에 무관심하거나 잘 알지 못한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을 명분으로 2007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법 제정 뒤 15년이 지나도록 공공기관 운영은 여전히 정권과 기획재정부 등 관료집단의 폐쇄적인 통제 아래 놓여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문성과 무관한 낙하산 인사들이 공공기관 임원 자리를 꿰차지만, 공공기관운영법이 아무런 역할을 못 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공공기관운영법에 의해 설치된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공운위는 공공기관 지정과 해제, 신설 심사, 경영 공시, 기능 조정, 임원 임명과 해임 건의, 경영 평가, 각종 정부지침 제·개정 등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 기재부 장관이 위원장이지만 다수의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구조로 일견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회의 일정이나 안건들은 사전에 공개되지 않고, 회의 결과조차 제때 공개되지 않는다. 공공운수노조가 최근 4년간 공개된 공운위 회의록을 분석해봤더니, 평균 회의 시간은 70분에 불과했고 심의 안건 624건 중 616건(98.7%)이 원안 통과됐다. 단 7건(1.1%)만 수정 의결됐고, 한건은 보류됐다.
다수 민간위원이 있다지만, 한달에 한번, 한시간 남짓 회의로 그 방대한 규모의 공공기관들에 관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겠는가. 장막에 가려진 채 졸속 심의가 판치고 있는 공운위는 그야말로 기재부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기재부 뜻대로 공공기관의 민영화, 기능 조정, 임원 임명, 각종 정부지침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결정이 통과된다.
공공기관이 공공기관답게 운영되려면, 기관 고유 업무의 공공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민주적 지배 구조를 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운위는 기재부로부터 독립하고, 위원(장) 구성에서 국회와 시민단체, 노동계 등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공공기관 민영화처럼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항들은 관료집단이 아니라 시민들이 숙의해 결정하도록 하고, 국회 동의를 받는 등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 근절과 시민이 참여하는 공공이사회, 노동자가 참여하는 노동이사제 강화도 필요하다. 돈벌이 중심으로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역시 기관 고유 업무와 특성을 고려하도록 다양화돼야 한다. 임금 등 노동조건 역시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에 구속될 게 아니라, 노-정이 교섭해 정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이런 사항들은 정권과 관료를 위한 공공기관에서 시민과 노동자를 위한 민주적 공공기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들이다. 법 제정 뒤 15년 동안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던 공공기관운영법을 이제는 전면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