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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주최자가 없어서 책임이 없다는 국가

등록 2022-11-07 19:57수정 2022-11-08 02:36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를 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를 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왜냐면] 김영희 | 변호사

2005년 상주 시민운동장에서 콘서트를 보기 위해 입장하던 시민들이 11명 사망하고 162명이 부상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2009년 화왕산 억새태우기 행사 중 7명이 사망하는 등 지역축제에서 안전사고가 이어져 이를 막고자 2013년 재난안전법 제66조11항을 신설해 지역축제 개최 때 정부나 지자체가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안전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였다. 위 규정은 안전관리가 필요한 축제를 ‘축제 기간 중 순간 최대 관람객이 1천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지역축제’나 축제장소나 축제에 사용하는 재료 등에 사고 위험이 있는 지역축제로 정하고 있다. 즉 사람이 1천명 이상 모이는 축제나 행사는 사고 위험이 있다고 보고 정부나 지자체의 ‘안전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제66조11항의 입법 취지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경찰도 1일 10만명 이상 모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단지 ‘주최자’가 없다고 아무런 안전대책이 없었던 정부나 지자체가 면책될 수 있는가? 공무원의 국가배상책임을 규정한 국가배상법 제2조는, 법령에 명시적으로 정해진 공무원의 작위의무를 위반한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존중 등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위반하는 등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는 경우도 포함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다. 또 실정법 조항의 문리해석만으로는 사회적 정의관념에 현저히 반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하는 경우 유추적용을 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따라서 주최자가 없더라도 10만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었던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단지 규정의 문언에 얽매여 ‘주최자가 있는 경우’에만 안전관리의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사회적 정의관념에 현저히 반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므로 재난안전법 제66조11항을 유추적용하여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관리의무가 인정될 수 있다.

이는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34조 제4호,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기본적 의무임을 확인한 재난안전법 제2조, 국가와 지자체가 재난이나 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무가 있음을 규정한 재난안전법 제4조의 취지상 명백하다. 주최자가 없는데도 10만명이나 모이는 축제이니 오히려 국가와 지자체의 안전관리의무는 더 높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원전업계가 전시라고 하면서,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안전을 중시하는 것은 관료적 사고”라는 대통령의 인식을 드러냈다. 대통령의 안전을 무시하는 듯한 그 말 한마디는 이태원 참사를 당한 지금에 와서 원망스럽게 떠오른다.

우리는 대형참사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아 피해자들이 소송하게 만들고, 정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싸우면서 실망과 분노로 지쳐 가는 것을 보아왔다. 국가는 참사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거나 축소하여, 피해자들이 참사로 인한 고통뿐만 아니라 기어이 고소·고발과 소송까지 하게 만들어 그로 인해 더 크게 상처받고 피폐해지도록 하지 말라. 그것이 진정한 애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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