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외벽에 노란 리본과 함께 `잊지 않겠습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왜냐면] 이광국 | 인천 계양구 계산4동
정부가 선포한 이태원 참사 애도기간은 끝났지만, 슬픔까지 억지로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뒤 나름 구축됐다고 믿은 사회안전망이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과, 참사는 언제든 우리 자신에게도 닥쳐올 수 있다는 집단적 충격 또한 크다.
사회적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등 중요한 논의들이 시작되고 있지만, 한가지 덧붙여 짚고 싶은 것이 있다. 에스피시(SPC) 계열 공장에서 노동자가 희생된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5일에는 코레일에서 올해 들어 4번째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끊이지 않는 중대재해 등으로 인해 누적된 희생자 수는,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가 아닐 뿐 대형참사를 능가한다. ‘전쟁 같은 삶’은 결코 비유가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119구급차 20억원, 전통시장 화재예방 87억 등 재난·안전예산이 기존 대비 약 1조원가량 감액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6월 간담회에서의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는 버려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 발언도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행정의 지향점을 가리킬 텐데, 혹여라도 안전행정 부재나 관련 예산 감축 등이 이러한 메시지에 조응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대형참사 또는 꾸준히 누적돼 일어나는 ‘조용한 죽음’ 모두 그 예방 책임은 국가에 있다. 나아가 자연스럽지 못한 그 어떤 죽음도 국가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언급한 사례 말고도, 금세 떠오르는 ‘위험한 상황’들은 많다. 입장인원 제한이 없는, 그래서 1개의 놀이기구를 타는데 3시간까지도 기다려야 하는 인구 과밀 놀이공원, 무서운 속도로 신호위반을 하며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오토바이들, 얼마 전 발생한 지진, 남북관계 경색에 따른 전쟁위험, 입시경쟁 교육에 신음하는 청소년들….
산재를 당하는 누군가는 우리 부모님일 수 있고, 오토바이에 치이는 누군가는 친구일 수 있다. 지진에 우리집이 부서질 수도 있고, 전쟁에 자식이 희생될 수도 있다. 주변 지인의 자식들은 입시경쟁 교육에 매우 힘겨워하고 있다.
열거하지 못한 수많은 사례가 더 있다. ‘참사 발생 뒤 대책 마련’이 아닌, ‘예방을 통한 참사 방지’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에 대한 점검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엇보다도 전 사회가 총체적 사회안전망 구축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 복원이 필수다. 이는 8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다짐했던 약속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촛불집회와 중·고생들의 일제고사 부활 비판 시국선언 등을 통해 ‘대통령 퇴진’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 기능의 ‘부재’로 사회안전망이 무너지면, 기억하겠다는 그리고 잊지 않겠다는 그 약속은 어느 순간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는 민심으로 타오를 수밖에 없음을 현 정부는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