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서울 성북구 한성대입구역 근처 가로수들이 잘려나가고 있다. 정다경 제공
[왜냐면] 정다경 | 성북청년정책네트워크 멤버
지난 8월 말 어느 더운 날, 출근길에 서울 성북구 한성대입구역 근처를 지나다 커다란 나무들이 사나운 톱질에 잘리는 광경을 보았다. 날카로운 쇠질 소리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무서웠다.
심은 지 80년이 넘은 이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과거에도 한번 베어질 위기를 겪었다. 2008년 구청이 도로확장 공사를 진행하며 인도에 있는 가로수들을 제거하기로 했는데, 성북구 예술인들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반대 운동에 나섰다. 1인 시위와 가로수 제거 반대 현수막 게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구청은 도로확장 공사를 진행하되 가로수를 유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지금까지도 지역 시민사회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일화인데, 당시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의 모임도 아직 유지되고 있다. 그런 위기를 넘겨냈던 성북구 플라타너스들 일부가 14년이 지난 뒤인 올해 결국 베어지고 말았다.
서울 강남·동작구 등지에서 물난리가 난 직후인 지난 8월 중순, 이 가로수 가운데 하나가 쓰려지면서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를 덮쳤다. 나무가 일부 썩어 약해진 상태에서 강한 태풍 바람을 못이겨낸 것이다. 운전자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구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성북구 공원녹지과가 내린 결론은 위험 요인으로 보이는 가로수는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30그루 이상 가로수들이 베어졌다. 내가 출근길에 목격한 게 그 현장이었다.
가로수를 이렇게 베어내는 것이 답이었을까. 도로경관 등을 위해 인간에 의해 식재된 가로수는 여름철 도심 열섬현상을 완화해주고, 미세먼지나 소음 문제 등에도 긍정적 효과를 준다. 그래서 ‘도심 속 허파’로 불린다. 가로수가 차량운전자나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당연히 조치가 필요하다. 위험요인이 될 수 있는 가로수들을 조사해 약해진 이유가 무엇인지, 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나무 기둥만 남겨놓다시피 하는 무분별한 전정(가지치기) 등 평소 가로수 관리에 문제점이 없는지도 살펴 정비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조사 결과를 시민들과 공유하며 어떤 방식의 해결책이 최선책인지 머리를 맞댔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절차는 없었고,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가로수들은 베어졌다. 다시 묻고 싶다. 과연 무조건적인 가로수 제거만이 해결책이었나.
80년 넘게 묵묵히 자리를 지킨 가로수들을 생물이 아닌 물건이라고 봐서였을까. 그래서 그 가로수를 아끼고 사랑하는 시민들도 가벼이 여긴 걸까. 6월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겠다”던 구청장의 말을 기억한다. 가로수가 베어진 자리를 바라보며 더할 나위 없이 가벼운 그 말을 떠올리는 시민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