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문화방송>(MBC) ‘뉴스외전’ 방송 화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왜냐면] 고승혁 | 옥소폴리틱스 부사장
금지는 마법과 같은 힘을 갖고 있다.
해리포터의 친구 헤르미온느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그 잡지를 읽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그걸 금지하는 거야.” 윤석열 대통령이 <문화방송>과 갈등하며 대통령실 출입금지를 언급하자 시청률이 치솟았다. 세간에는 이런 말이 돈다. “국힘한테 두들겨 맞으면 떡상한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금지당해서 ‘떡상’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감사한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여론데이터 분석 결과를 이렇게 표현했다. “조작방송·시청자 기만이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은 여론조사 규제법을 내놨다. 각종 정치 현안에 관한 여론조사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제 여론조사가 상승할 시간이 되었다.
모든 새로운 것은 틀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시간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가 등장했을 때 반응은 두가지였다. “미래의 모빌리티다.” 혹은 “가짜 택시다.” 논란이 무색하게도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부르는 일상을 자연스레 살고 있다. 1920년대 신문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선비들은 언문으로 국정을 논하는 것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것은 신문이었고 옛것은 조보였다. 누가 살아남았는지 설명하지 않겠다. 정확히 100년 뒤인 2020년대. 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빅데이터를 수집해 여론을 분석한다. 국민의힘은 우편 여론조사와 집전화 여론조사가 옳은데 왜 스마트폰으로 가짜조사를 하느냐고 일갈한다. 누가 살아남을지 설명하지 않겠다.
불과 10년 전에는 정치인들이 휴대전화 여론조사를 가짜라고 맹비난했다. 집전화만 옳다는 것이었다. 일과시간에 집 밖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당당히 무시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 세계였다.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을 달고 사는 세계에서 여론조사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여의도의 시간이었다. 낡은 것들은 평화롭게 낡아가고 싶었다.
모든 오래된 것이 틀린 것이 아니듯, 모든 새것이 틀린 것도 아니다.
나는 집에서 항상 라디오를 듣는다. 디스크자키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뜻밖의 음악이 좋다. 그렇다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철폐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새것과 옛것은 그저 다른 무엇일 뿐이며 서로의 존재 가치는 고정되어 있다. 국민의힘은 앱 기반 빅데이터 분석을 향해 신뢰구간과 표본오차를 밝히지 않아서 잘못됐다고 말했다. 우스운 노릇이다. 넷플릭스를 향해 영화관인데 왜 의자가 없고 팝콘도 없냐고 탓하는 꼴이다. 카카오톡을 향해 우체국인데 왜 스쿠터가 없냐고 탓하는 모양새다. 오래된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오래된 기준으로 새것을 평가할 수는 없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국민의 뜻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국민의힘 주장대로 우편조사와 전화조사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기반 조사보다 정확할까.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스팸전화라고 생각해서 끊는 게 현실이다. 우편조사는 당최 내 인생에서 본 적도 없는 조사방식이다. 그들이 현실을 틀렸다고 주장할 때 나는 금지에 담겨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본다. 권성동 의원에게 제안한다. 모든 새로운 여론조사를 금지해달라. 입맛에 맞는 조사만 제발 허락해달라. 나는 국민의힘이 ‘금지’라는 도구로 미래를 ‘진흥’하는 아름다운 세계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