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을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 임원들이 참배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제공
[왜냐면] 이지현 | 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 시인, 연극인
명절에는 항상 광주 북구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의 구묘역과 신묘역을 들린다. 그리고 선산에 가서 불효를 고백한다. 이런 모습은 2년 6개월의 구속 기간만 빼고 수배 시절에도 계속됐다. 못난 사람의 회고록 <어느 봄날의 약속>에서 밝혔듯이, 5·18민주화운동 때 필자가 부상 당하고 둘째 동생은 상무대로 연행당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안고 5·18 유가족과 결혼한 여동생은 1983년 5·18민주묘지 이장 음모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끊었다. 풍비박산.
우리 가정만이랴. 애국시민들은 기뻐도 웃지 못했으며 즐거운 날에도 밝은 옷을 입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다. 공부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은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으로 투사가 됐고 교도소에 갇혔다. 관련자들은 한동안 폭도 빨갱이로 매도돼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지도 못한 채 감시·연행·사찰을 당했다. 분통이 터진 유공자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자살이란 극단의 길을 택하기도 했다. 지금은 5·18민주묘지를 누구나 찾을 수 있지만 1980년 초에는 불이익을 당할까 봐 정치인들은 참배하지 못했다. 경찰이 막는 바람에 시민들도 산을 넘어 묘지를 갔다. 국민에겐 5·18과 묘지는 금기어가 됐다. 이 얼마나 참담하고 불행한 조국인가?
1985년 열린 5·18민주화운동 5주기 추모식에서 이지현씨가 사회를 보고 있다. 이지현씨 제공
나는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참배를 했을까? 그게 바로 도리이며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나만 그랬을까? 아니다. 1980년 5월을 겪은 애국시민은 모두 그랬다. 5·18민주묘지는 이미 성역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성스러운 곳을 공수특전단 간부들이 새달 19일에 참배할 예정이란다. 이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이분들의 광주 방문은 지난 17일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부상자회·공로자회·유족회) 임원들이 1980년 당시 광주에서 숨진 계엄군들의 묘소를 참배한 것에 대한 답례란 점이다. 졸고를 쓰기로 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5·18민주화운동 기념공연 ‘애꾸눈 광대’ 249회째 공연을 마친 단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지현씨 제공
필자는 1980년 5월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5·18민주화운동 기념공연 ‘애꾸눈 광대’를 249회째 하고 있다. 100회가 넘어가자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1980년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선의의 피해자다, 그분들의 애환을 연극으로 꾸미는 게 문화예술인의 숙명 아닐까 하는…. 그래서 주위에 물었더니 “그래, 그대가 진정한 광대야”라는 분들도 계셨지만 “공수부대원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부지기수 아닌가?”, “아니, 희생자들의 시신을 어디에 암매장했는지도 양심선언을 하지 않고 있는데 시기상조네” 또는 “그대가 폭로한 유 아무개 양처럼 성폭행당한 사람이 수십 명 되는데, 아직 진실이 안 밝혀졌잖아”와 같이 부정적 여론이 90%가 됐다. 그래서 가슴 속으로 공수부대원의 슬픔을 보듬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포기했다.
5·18민주화운동 청문회가 열리기 전 1989년 2월20일 이지현씨가 여고 1학년 때 성폭행 당한 유 아무개 씨와 대화하고 있다. 이지현씨 제공
이번 공수부대 간부들의 참배에 대해선 대승적 차원에서 찬성한다. 광주학살 원흉 전두환마저도 사과하면 용서하겠다는 광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공수부대원들을 어찌 졸장부처럼 원망만 하겠는가? 당연히 용서와 화해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시기와 방법 두 가지에서 문제가 있지 않을까?
첫째, 시기 문제다.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했지만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은 아직도 암매장된 상태다. 특히 정부에서 근로정신대 문제를 일본의 사과도 없는 상황에서 일본기업의 돈이 아닌 한국기업에서 갹출하여 배상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피해당사자들과 국민 여론이 악화한 분위기에서 참배를 조급히 추진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둘째, 방법의 문제다. 권력기관의 간부가 사단법인 오월어머니집에 만나기를 요청했단다. 어머니들이 무등산 같은 가슴으로 천 번이라도 뜨겁게 보듬어주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5·18민주화운동 단체는 반드시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광주 시민사회단체와 토론회를 통해 교감을 이뤄야 하기에 신중히 처신했다고 한다.
용서와 화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며 시대적 과제다. 그래서 화해에 앞서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와 회원들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일을 해야 한다. 또한 공수부대 간부들도 보여주기식이 아닌, 암매장과 성폭행 등에 대해 양심선언을 한 뒤 5·18민주화운동 진실규명에 힘을 보태며 5·18민주묘지를 참배해주길 간곡히 권유 드린다.
1984년 열린 5·18민주화운동 추모제에서 도청에서 산화한 안종필 군의 누나 안경순 여사가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다. 이지현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