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 49재 추모 위령제’에서 유가족 등이 영정에 꽃을 바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왜냐면]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가 밝혀야할 진실⑤ | 조인영 변호사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
이태원 참사 49재 추모제가 진행된 2022년 12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윈·윈터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한없이 밝은 얼굴로 술잔을 샀다. 대통령이 참사에 보인 무심한 태도는 그 자체로 명확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적 차원에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목놓아 외치는 유가족을 뒤로하고,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사회적으로 애도하고 추모할 참사로 보지 않는다고 외친 것과 같다.
참사에 관한 정부의 대응 전반에 이러한 태도가 깔려 있다. 재난 상황에서 △희생자의 신원을 빠르게 확인해 유가족에게 인도 △장례 절차 지원 △유가족 모임 구성·지원 △분향소 설치 △의료・심리 지원 등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마주한 유가족에게 정부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러나 참사 현장에서부터 책임 있는 주체 그 누구도 유가족과 생존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10월29일 참사 당일 희생자들이 있는 다목적 체육관에 도착한 가족은 작은 정보라도 얻기 바라며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현장 공무원들은 실종자 신고를 먼저 하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할 뿐이었다. 희생자들이 각 병원으로 흩어지고 유가족이 각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희생자의 모습은 이미 검시가 끝나고 탈의된 상태였다. 병원에 일찍 도착한 가족은 의사가 희생자의 옷을 가위로 자르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검시 과정에서 잘린 옷을 지금까지 받지 못한 가족들이 존재한다. 왜 검시를 그렇게 빠르게 진행했는가.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자마자 경찰은 유가족과 생존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연고지 장례식장으로 희생자를 옮기려는 가족에게 조사를 받아야만 희생자를 인도할 수 있다며 독촉했다. 참사 현장에서부터 희생자를 내내 지켜온 생존자와 유가족을 나란히 두고 경찰은 유가족에게 ‘이 생존자는 살았는데 희생자가 죽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왜 유가족과 생존자를 이토록 폭력적 방식으로 조사했는가.
보건복지부는 11월10일 국가트라우마센터를 통해 피해자 심리지원을 심층 관리할 것이며, 의료·경제적 필요사항 등은 이태원 사고 원스톱 통합지원센터로 연계해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합과 연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몇몇 유가족은 심리 상담과정에서 2차 가해에 가까운 말을 들었고, 경찰 대응에 대한 불만이 담긴 유가족의 상담 내용이 경찰에 유출되기도 했다. 또 다른 유가족은 외부활동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해져 원스톱지원센터에서 한의원 치료를 안내받았는데, 진료를 받고 나니 지원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정 시기가 지났다는 이유였다. 다른 가족이 나서서 항의하자 원스톱지원센터는 다시 가능하다고 했다가, 재확인하자 또다시 안 된다고 하는 등 여러 번 말을 번복했다. 결국 유가족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심의위원회를 거쳐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왜 유가족이 이런 혼란을 겪어야 했는가.
그 누구도 유가족에게 먼저 묻지 않았다. 유가족이 경험한 내용은 유가족에게 물어서, 유가족이 경험하기 이전 내용은 생존자, 목격자, 구조자, 상인, 참사 현장의 공무원 등을 비롯한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 국정조사에서 진상규명은 공식적 기록과 고위 관계자의 답변을 통해서만 논의됐다. 그 결과, 참사 당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고 참사 뒤 정부의 태도와 지원 방식에 대해서도 유가족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 하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