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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독립적 조사기구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

등록 2023-03-15 18:41수정 2023-03-16 02:40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소속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소속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왜냐면]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가 밝혀야할 진실⑥ | 이태호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진상규명특별법 티에프

이태원 참사와 유사한 해외 압사 사고가 여럿 있었다. 이들 사고의 진실과 책임에 관해 지금 우리가 아는 대부분은 정부 조사나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것이 아니다. 유가족이 끈질기게 요구한 독립적 조사기구가 밝혀낸 것이다.

1989년 영국 셰필드의 힐스버러 축구장에서 관람객 94명이 압사하고 700명 이상이 부상한 참사를 두고 경찰은 자신의 책임을 감추기 위해 관중 탓, 마약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참사 발생 20년만인 2009년에 구성된 ‘힐스버러 독립조사위원회’는 “경찰이 이전부터 존재하던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고, 희생자들에게 조직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다. 응급구조대의 초기 대응 또한 제대로 이뤄졌다면 사망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진실을 밝혀냈다.

2001년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 불꽃놀이 축제 압사 사고도 재난 전문가와 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제3자 위원회’가 주최 측인 아카시시와 경찰, 위탁계약을 체결한 경비회사를 조사해 진실과 책임을 규명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독립적 조사기구를 요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국제적으로 알려진 독립적 재난조사기구 활동 사례가 있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특별법에 따라 구성했던 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2015~2016년, 1기 특조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2019~2022년)가 그것이다. 두 조사는 정부의 구조 방기와 이후 조사 방해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책임소재와 재발방지대책에 관한 방대한 조사결과를 도출했다. 하지만 9년 넘게 벌인 조사 과정은 진상규명의 독립성, 객관성, 효과성이 특별법이나 특별조사위원회 구성만으로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잘 알려진 대로 1기 특조위는 박근혜 정권의 조직적 방해 끝에 사실상 강제 조기 해산됐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독립적 조사는 박근혜 정권 탄핵 이후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병행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라는 이름으로 재개할 수 있었다.

1기 특조위의 조사 과정에서 정부·여당과 정보기관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가로막기 위해 이른바 ‘세금 도둑론’을 여론공작에 동원했다. 이들이 했던 짓의 일부를 살펴보자. 정부·여당은 특조위의 핵심 부서인 진상규명국 2016년 예산요구액 73억5천만원 가운데 9%인 6억7300만원만 승인했다. 삭감 예산에는 침몰 선체 정밀 조사 예산 48억원도 포함돼 있었다. 침몰 원인은 박근혜 정권 탄핵 이후 뒤늦게 이뤄진 인양과 선체 조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다.

정권의 안위를 우선하는 일부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세월호 참사처럼 (정치투쟁에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는 유가족이) 돼서는 안 된다’며 세금 도둑론을 다시 들고나와 겁박한다. 그러면 묻겠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 진실에도, 정의에도, 제대로 된 애도와 피해 회복에도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세월호 이전 참사 피해자들의 선례를 따르라는 건가. 독립적인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기구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 그 구성과 활동에서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입김은 배제해야 하고 조사위원회는 피해자 권리를 존중하면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전문가와 각계인사로 구성해야 한다. 조사기구 구성이 늦어질수록 진실은 은폐된다. 국회는 서둘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적 조사기구를 통해 진실을 찾으려는 피해자와 시민들의 꺽이지 않는 마음이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운영백서(2022년)에 수록된 글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 “진실을 향한 작은 한 걸음, 기록의 한 조각 어느 하나도 국가나 국회의 선의나 조사위원회의 조사 권한을 존중해 순탄하게 이뤄진 적이 없었다. 한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온몸으로 길을 열어온 피해자 가족들, 그리고 함께 연대하고 행동해온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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