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최기영 |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우리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 1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4.5%나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지나면서 크게 성장했던 관련 산업이 주춤하면서 세계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지난해 4분기 전 세계 디램 매출은 전분기 대비 32.5% 줄어들었다. 우리나라가 40% 이상(홍콩을 포함하면 60% 이상) 의존하던 중국으로의 수출이 급감한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1월 1~25일 기준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46.6% 감소했다고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에 의한 중국 투자 통제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앞날이 어둡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주춤하는 사이에 미국과 일본은 해외 기업의 자국 내 투자를 통해 자국의 반도체 산업 부흥을 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케이칩스법)이 30일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대기업의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현재의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러지 않아도 부족한 세수만 더 줄이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미국은 반도체법을 통해 해외 반도체 기업이 자국에 투자하면 보조금을 주겠다는 식으로 투자를 유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중국 투자는 제한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으로서는 뒤통수를 크게 맞은 느낌일 것이다. 삼성전자나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중국에 많은 투자를 해서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적 투자가 필요하다. 미국의 요구는 거기에 멈추지 않는다. 초과이익을 공유해야 하고, 재무건전성·안보를 이유로 기업정보도 제공하라고 한다. 첨단 반도체 기업은 소재의 사용이나 제조공정 등을 유추할 수 없도록 기업정보의 유출을 철저히 차단해왔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미국 투자나 보조금 신청을 포기하기는 어려울 터다. 이렇게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나서야 하는 것이 정부다. 외국 정부와 직접 협상하기 어려운 기업 대신 우리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상황이나 어려움을 충분히 설명하고, 기업이 원한다면 투자나 보조금을 부담 없이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메모리반도체는 우리나라의 시장점유율이 70%가 넘을 정도로 세계 최강이다.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설계·제조·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을 지렛대 삼은 외교를 할 수는 없을까? 현재 절반에 육박하는 중국에서의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펼 수도 있지 않을까? 필요하다면 네덜란드나 심지어는 경쟁 기업이 있는 대만과도 협의·연대하는 외교를 할 수는 없을까? 왜 우리는 부당한 요구에 맞서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만 있을까?
케이칩스법으로 돌아가 보자. 2021년에 이미 세액공제율을 3%에서 6%로 상향했고, 2022년 말에 다시 8%로 상향한 조세특례제한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또다시 15%(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경우)로 상향시키자는 것이다. 반도체 강국인 미국, 일본, 대만 세 나라가 힘을 합치는 위기 상황에 대응해서 세액공제율만 상향에 상향을 거듭한다고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그 정도 지원한다고 우리나라 반도체 대기업들이 미국에 하듯이 우리나라에 대대적인 추가 투자를 할까? 물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최선의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차세대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은 반드시 국내에 구축하도록 유도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세액 공제로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두게 될지 구체적 추정이나 시뮬레이션은 해본 것인가? 차라리 그 세수를 활용해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거나 연구개발과 인력양성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우리가 대처하는 현재 상황은 많은 의문과 함께 보다 나은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조금의 국가 재정도 낭비할 여유가 없다. 국민 혈세를 투입하려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특히 국내 지원이나 투자만이 아니라 비상한 외교적 노력과 국가 간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까지 고려해야 한다. 최근 미국이 반도체법의 기존 방침을 다소 완화한 듯한 세부규정을 발표했다. 최악은 면했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으며 여전히 최악의 상황이다. 정부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벤처기업, 대학, 국제 정세에 능통한 외교 전문가를 포함한 다양한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현재 상황을 헤쳐나갈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