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워싱턴선언과 비견 한미상호방위조약, 세계 유일 군사특권 담은 불평등조약

등록 2023-05-08 18:55수정 2023-05-09 02:35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을 하고 있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을 하고 있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왜냐면] 고승우 | 민언련 고문·언론사회학 박사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한 ‘워싱턴 선언’, 즉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강화를 나토 핵공유협정이나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비교하는 주장이 있다.

나토 핵공유는 미국이 전술 핵무기를 유럽의 나토 동맹국 영토에 배치하고, 나토 동맹국들이 ‘핵기획 그룹’을 통해 핵계획에 참여하며, 핵무기를 목표지점에 공격하는 수단으로 유럽 동맹국들의 공군기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나토 동맹국에게 미국 전술핵에 대한 소유권, 결정권, 거부권은 없다. 워싱턴 선언은 나토의 경우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고 한국민의 불안감을 달래는 효과만 큰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70년 전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비교하며 워싱턴 선언을 추켜세웠다. 지난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세계 최강 국가와 70년 동안 동맹을 맺어왔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한미동맹 70년 역사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다. 국가 관계에 있어서 고마운 것이 있으면 고맙다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불려도 될 정도로 의미가 크다”며 “이번 선언은 재래식 무기를 기반으로 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핵을 포함한 상호방위 개념으로의 업그레이드”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국제법적 시각으로 보면 미국 쪽에 크게 기울어진 심각한 불평등 조약이다. 이 조약은 북진통일을 주장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정전협정 체결에 반대하면서 미국과 체결한 조약이다. 몇 가지 조문은 유엔회원국의 위상에 맞지 않는 불평등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것이 미국이 자국 군사력을 한국 어느 곳에나 배치할 수 있는 권리를 담은 4조다. 세계에서 미국만이 유일하게 누리는 군사적 특권으로 한국의 군사적 자주권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이 조약의 파생물이 1966년에 만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소파)이다. 4조의 부속 협정으로 미군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지·시설 제공을 규정한 것이다. 주한미군의 군사적 행동 등에 대한 규정이 전무해 주한미군은 훈련 계획 등을 한국에 통보할 의무조차 없다. 그 전까지 미국이 부담하던 주한미군 주둔비를 1992년부터 한국이 일부 부담토록 하는 방위비특별분담금협정(SMA)이 만들어진 것도 소파 5조2항에 근거한 것이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가 한국에 배치된 것도, 최근 한반도에 수시로 출현하는 미국 전략자산의 진출을 가능케 한 것도, 주한미군은 치외법권 이상의 위상을 보장받는 것도, 대북 선제공격과 참수작전, 북한 점령을 내용으로 하는 ‘작전계획 5027' 등이 가능한 것도 4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4조가 미국에 의해 전횡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1960년대 중반 차지철을 앞세워 국회와 언론을 통해 그 문제점을 부각한 적이 있다. 미국으로부터 월남전 참전 대가를 더 받아내기 위한 정치공작이었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계획이 발표되자 핵무기 자체 제조를 앞세워 미국을 압박하다가 한미연합군체제를 발족시켜 전시와 평시 작전권을 미군이 행사토록 만들었다.

또 2조는 ‘무력 침공 위협’에 대한 판단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미국이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북한을 선제 타격할 전략을 검토하면서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하지 않는 근거가 되고 있다. 오늘날 한미 군사동맹에서 누가 갑이고 을인지가 명백해지는 조항이 4조와 2조인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는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협정이 △미군은 필리핀 군부대 안에서 해당 지역 동의를 받을 때만 한시적 주둔을 할 수 있고 △필리핀 국내법의 적용을 받으며 영구기지는 만들지 못하며 △미군이 투자한 자체 시설은 추후 필리핀에 양도하게 되어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확연해진다.

국내에서는 주한미군 기지나 법적 지위문제를 거론할 때 이 조약의 부속협정인 소파만을 주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위법과 하위법 관계를 볼 때 이는 적절하지 못하다. 이 조약의 법리에 따라 만들어진 소파 개정은 모법의 개선이나 폐기로 가능할 뿐이다. 한국이 이 조약 폐지를 통해 미국과의 군사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좀더 국제적 상규에 맞게 개선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미국식 법치주의는 한반도에서 보장된 기득권을 최대한 활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력 세계 10위권, 군사력 세계 6위인 한국이 지구촌 200여 국가와 같은 수준으로 자주권을 회복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파탄 난 ‘윤석열 외교’, 진영 대립 최전선에 내몰린 한국 1.

[사설] 파탄 난 ‘윤석열 외교’, 진영 대립 최전선에 내몰린 한국

노벨상 작가의 서점 [서울 말고] 2.

노벨상 작가의 서점 [서울 말고]

막장극 ‘이상한 나라의 김 여사’ [아침햇발] 3.

막장극 ‘이상한 나라의 김 여사’ [아침햇발]

불온서적이 노벨상을 받았다 [똑똑! 한국사회] 4.

불온서적이 노벨상을 받았다 [똑똑! 한국사회]

한강 ‘붐’을 돌아보며 [세상읽기] 5.

한강 ‘붐’을 돌아보며 [세상읽기]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