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김동수 | 기록노동자·<유령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청소는 집안일의 하나다. 집안일은 희생을 전제로 한다. 맞벌이하는 딸과 사위를 대신해 손주를 돌봐줬던 한 광운대 청소노동자의 일과는 이랬다. 청소일을 마친 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손주를 데리러 갔다. 그 순간부터 딸이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까지 손주와 꼬박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청소노동과 달리, 돌봄노동에 대해서는 보수를 받지 않았다. 딸이 아이 맡기는 일로 돈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집안일이 이런 식이다. 가족을 위해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3월 외국인 가사 노동자에 한해, 예외적으로 최저임금법을 적용하지 않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금까지도 그는 언론에 나와서 이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가사 ‘노동자’를 가사 ‘도우미’로 칭하고 있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가사 업무가 법정 최저임금 이상을 받아야 하는 ‘고된 노동’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위해 ‘쉽게 도와줄 수 있는 일’ 정도로 격하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조 의원이 그 대가를 최저임금에 턱없이 부족한 월 100만원이란 액수로 수치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외견상 가사 ‘도우미’가 하는 일이 집안일과 비슷해 보여도, 그들은 엄연히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다. 결국 이들에게 일을 맡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비용도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 도우미’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주문한 것도 그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겨레> 5월24일치 1면). 문제는 그 희생을 한 사람, 한 계급, 한 성별에만 전가하려 한다는 점이다. ‘자국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자국 맞벌이 가정’의 가사부담을 줄이며, ‘자국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국보다 경제력이 낮은 외국의 여성 노동자만 희생양으로 삼는다.
실은 ‘자국의 청소노동자’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과 조 의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청소노동을 최저임금 이하의 가치로 본다. 그렇다고 이를 법제화하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에 탈법을 시도한다.
2018년 동국대는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의 업무를 근로장학생에게 맡기려 했다. 2017년까지 청소노동자가 하루 8시간 전일제로 했던 업무다. 동국대는 근로장학생에게 이 일을 맡기면서 일 2~3시간의 단시간 근로 형태로 바꿨다. 이유가 있었다. 한국장학재단 자료를 보면, 현재 교내근로를 하는 국가근로장학생은 근로시간이 주당 20시간 이내로 제한된다. 이는 그들이 공부에 더 충실해야 하는 재학생 신분이기 때문이다. 근로장학생은 이름 그대로 근로하는 학생이다. 그래서 임금이 아닌 장학금을 받는다.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동법에 근거한 수당도 받을 수 없고, 4대 보험도 보장받지 못한다.
지난 4월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시급 400원을 인상하기 위한 투쟁을 389일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건 지난해 정년퇴직한 한 명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합의는 미봉에 불과하다. 2023~2026년 사이 정년퇴직을 앞둔 10여명의 충원 문제는 다음 임금교섭 때로 미룬 상태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줄인 만큼, 인건비도 준다. 대신 남아 있는 노동자들의 업무는 늘어난다.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근로장학생을 고용하거나, 무리한 인력감축 뒤 남아 있는 노동자들에게 ‘독박 청소’를 강제하는 상황에서 청소노동은 누가 그 일을 맡든, 희생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집안일에서 파생된 노동의 숙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