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6·25때 국가폭력에 희생된 유가족의 통한을 풀어주세요

등록 2023-06-21 19:05수정 2023-06-22 02:06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6월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사 특별법 재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6월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사 특별법 재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양유복 | 70대 남성·전남 영암군

아빠 어디가? 금방 꽃신 사가지고 돌아오마.

3살 된 어린 딸에게 꽃신을 사주겠다며 나간 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임신 6개월, 23살 꽃다운 나이에 싸늘한 주검으로 남편을 맞이한 어머니. 그날 어머니 배 속에 있었던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아버지를 보지도 부르지도 못한 채 통한의 세월을 살아왔다. 정권 야욕에 도취해 국민의 생명을 파리 목숨으로 생각한 대통령 이승만의 만행은 내 가족의 시련과 고난의 시작이었다.

올해 74살인 나는 지난 3월15일 광주 시민회관에 떨리는 손으로 노크한 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고 양재철 선생님의 가족이냐고 묻기에 “예. 그렇습니다. 제가 양유복입니다”라고 대답한 뒤 착잡하고 긴장된 서글픈 감정 속에 의자에 앉았다. 신분증과 준비해온 서류를 넘겨주자 서울에서 내려온 대한민국 진실화해위원회 과거사 진상조사관이 진솔한 대답을 부탁했다. 누구에게 아버지의 사망 이야기를 들었냐는 질문에 어머니에게 들었다고 했다.

나의 머릿속에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 3살 위 누나와 함께 우리 세 가족이 어렵게 살아온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하고 목이 메 대답하기가 힘들었으나 정신을 가다듬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막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조사관의 물음에 자세히 대답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뒤 우리 아버지와 한마을에 사는 절친한 친구가 경찰에 연행됐다. 대통령 이승만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한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분이다. 마을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양재철이라고 대답했고, 아버지는 영문도 모르는 채 영암경찰서로 연행됐다. 1950년 7월22일 전남 영암군 금정면 연보리 차내골 산에서 100여 분이 아무런 죄도 없이 아무 영문도 모르고 경찰에 의해 집단사살돼 사망하셨다.

이후 우리 세 식구는 아버지 없이 모진 고난의 세상을 살아야 했다. 어머니와 누나는 보리 단을 머리에 이고 나는 새끼줄로 보리 단을 묶어 등에 지고 1㎞나 되는 길을 애처롭게 걸어가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인생 초기에 너무도 큰 고난과 시련의 날이었고 그 모두가 공권력에 의한 국가폭력으로 발생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원한과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자 자식의 할 도리라 생각하고, 이승만 정권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조사에 최대한 협조해 명예를 회복시키려 한다. 명령에 따라 총을 쏜 경찰에게는 원망은 있으나 미움은 없다. 그들도 국가 폭력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이 땅에서 나와 같이 부모를 잃고 온 가족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자의 직계가족이 살아 있을 때 정부는 하루라도 빠르게 그들에게 진솔한 사과와 배·보상을 해야 한다. 빨갱이로 덮어씌운 멍에를 거두고 명예를 회복시켜 희생된 자의 원한과 억울함을 달래고 유가족의 피눈물 나는 과거를 잊을 수 있도록 국가의 의무를 다하길 바란다. 74살의 6·25 희생자 유가족으로서 죽기 전에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제 윤석열과 검찰이 다칠 차례다 1.

이제 윤석열과 검찰이 다칠 차례다

일상적 불심검문에 대학생·시민들 ‘불복종’…공권력 바꿨다 2.

일상적 불심검문에 대학생·시민들 ‘불복종’…공권력 바꿨다

‘윤 부부 비방 글’ 논란, 한동훈은 왜 평소와 다른가 3.

‘윤 부부 비방 글’ 논란, 한동훈은 왜 평소와 다른가

[사설] 대통령 관저 ‘유령건물’ 의혹 더 키운 대통령실 해명 4.

[사설] 대통령 관저 ‘유령건물’ 의혹 더 키운 대통령실 해명

시국선언 초안자에게 주문한 두 가지 [말글살이] 5.

시국선언 초안자에게 주문한 두 가지 [말글살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