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입장을 밝히는 도중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왜냐면] 최영승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10·29 이태원 참사 책임과 관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를 지난달 25일 헌법재판소(헌재)가 기각했다. 이 장관은 참사 관련 사전 예방과 사후 재난대응조치 및 발언에 있어서 헌법·법률 위반을 이유로 국회로부터 탄핵을 소추당해 심판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헌재는 기각 이유에서 이 장관이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거나 국민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태원 참사의 법적 책임 규명을 위해 경찰은 대규모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한 바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재난안전관리사무의 최종 책임자가 경찰의 상급부서인 행안부 장관인 관계로 윗선 수사가 제대로 될 리 없음을 이미 알아차렸다. 예상대로 경찰은 관할 구청장, 경찰서장 등에 대해서만 칼끝을 겨누고 더 윗선은 다가가지 못했다. 검찰 또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국회 차원의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가 있었으나 미완성에 그쳤다는 평가가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국회가 이 장관에 대해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들어 탄핵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행안부 장관이 재난안전에 관한 정책을 총괄하므로 일상 공간에서 발생한 사회재난과 인명피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주최자 없는 축제의 안전관리나 매뉴얼 규정 미비, 정부기관 간 통합 대응역량 부족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이 장관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주최자 없는 행사일수록 더 무질서하며 위험에 노출될 것임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거기다 축제 기간 인파밀집을 예상한 언론보도가 있었음을 헌재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다중밀집사고 자체를 예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를 폈다. 이 행사가 전부터 있어 온 것이었음에 비춰 무책임해 보이는 헌재의 인식은 국가가 내 안전을 지켜주리라 믿는 국민을 불안하고 허탈하게 한다.
탄핵 기각이 이 장관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헌재는 재난과 안전에 관한 책임이 행안부 장관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다만 재난대응의 미흡함만으로는 탄핵심판절차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봤다. 더욱이 일부 재판관은 여전히 이 장관의 사후 재난대응이 국가공무원법상의 성실의무에 위반되고 일부 사후 발언은 국가공무원법상의 품위유지의무에 위반됨을 지적하고 있다. 헌재 결정과는 별개의 책임이 수반돼야 하는 까닭이다.
그동안 이태원 참사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을 보지 못했다.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다지만 참사 뒤 지금껏 보여준 언행으로 봐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대신 적당한 선에서 법적 책임으로 끝내고 덮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헌재 결정이 있은 뒤 이 장관은 더 이상의 소모적 정쟁을 멈추고 이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힘 모으자고 했다. 거기에서 이태원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사과의 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야당의 탄핵소추권 남용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언급과도 궤를 같이한다. 탄핵소추를 정쟁으로 몰아간 데서 참사 당시나 지금이나 이 사태를 대하는 일반 시민의 눈높이와 확연한 인식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참사는 유족과 시민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와 희생자를 무방비로 내몰았다는 무거운 채무를 안겨줬다. 동시에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인재성 참사를 두고 법적 책임만으로 유족과 시민을 치유하기에는 상처가 너무 깊다. 반드시 정치적 책임이 선행되고 법적 책임이 따라야 하는 이유다.
헌재의 탄핵 기각이 이태원 참사의 끝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의 부채를 확인하고 완수해야 할 과제를 던져줬다. 그런 면에서 이태원 참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