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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산재 원인은 개인의 실수·질환? 강철 같은 노동자는 현실에 없다

등록 2023-09-04 18:21수정 2023-09-05 02:38

지난달 22일 오전 경기 성남시 중원구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 앞에서 열린 ‘코스트코 사망 근로자 산재 신청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관계자와 유족이 구조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오전 경기 성남시 중원구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 앞에서 열린 ‘코스트코 사망 근로자 산재 신청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관계자와 유족이 구조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동수 | 르포작가·‘유령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사고 원인을 개인에 돌리는 접근방식으론 기업의 구조적 책임을 묻는 과정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8월15일치 한겨레 기사(SPC 노동자 ‘끼임사’에 동료 입건…“작업장 시스템부터 따져야”)를 읽었다. 지난 8월8일, 샤니 성남공장에서 일하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빵 반죽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사고에 대해 경찰이 그녀와 2인 1조로 함께 일했던 동료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한 것의 문제를 지적한 기사였다. 경찰뿐 아니라 기업도 산업재해(산재)가 발생하면 안전 체계 문제를 살피기보다 노동자에게 과실이 있었는지를 먼저 따지는 경향이 있다. 산재의 책임이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의 잘못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사실 개인의 과실에는 부주의만 있지 않다. 노동자가 이전에 갖고 있거나, 그렇게 의심되는 지병도 포함된다. 지난 6월, 코스트코 경기 하남점 주차장에서 카트 정리 업무를 하던 30대 남성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그가 일하던 당시 낮 최고기온은 33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제대로 된 냉방시설 없이 차량이 내뿜는 엔진 열기 가득한 주차장에서 하루 4만보 정도를 걷고 뛰며 일해야 했다. 냉방시설을 갖춘 휴게실은 일터와 멀리 떨어져 있어 휴식시간에 왔다갔다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그의 사망이 비롯했다는 근거가 있음에도, 유족들은 그에게 지병이 없다는 개인적 사실까지 굳이 밝혀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회사 쪽이 그의 죽음을 산재가 아니라 병사로 몰고 가려했기 때문이다. 유족은 7월31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조문을 마치고 난 다음에 대표이사가 직원들 앞에 가서 ‘원래 병 있지 병 있지’ 하면서, 또 다른 분은 ‘원래 병이 있는데 속이고 입사했지’ (하면서) 직원들 앞에서 아주 막말을 퍼부었다”고 말했다.

2021년 과로사로 사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아무개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지금도 서울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7월13일치 한겨레 기사(영어시험 강요·격무 끝 숨진 청소원…‘서울대 책임’ 법정서 따진다)를 보면, 이씨의 유족이 서울대에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1억4천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재판에서 “서울대 쪽은 업무 강도에 대한 이씨 쪽 주장이 과장됐”고 “업무와 이씨 사망 사이에도 인과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서울대 쪽은 여전히 이씨의 사망 원인이 이씨 본인에게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청소노동자들이 일하다 자주 발병하는 질병이 있다. 바로 근골격계 질환이다. 그런데 청소노동자 대부분이 고령이란 점을 들어 사업주들은 이 질환을 높은 업무강도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그 나이대의 자연스런 노화 현상으로 쉽게 상정한다. 쓰레기가 꽉 찬 100ℓ짜리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전체를 돌아다니고, 업무량과 견줘 지나치게 짧게 정해놓은 근로시간 탓에 사무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매일 급하게 청소하고, 미끄럼 방지 작업화를 지급받지 못하고 일하다 미끄러져도 말이다. 뼈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관절염, 오십견 등의 질환은 노화의 산물이라는 식이다.

노동자의 실수나 질환 탓에 산재가 발생한다는 논리는 노동자는 완벽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노동자는 높은 업무강도를 끝까지 버텨낼 수 있는 ‘강철 같은 신체’를 가져야 하고, 위험한 작업을 하면서도 ‘실수하지 않는 정신력’을 지녀야 한다. 이는 비용절감을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이 가장 바라는 인재상일지 몰라도, 현실에서 그런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나 가벼운 질환이 치명적 사고로 이어지는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혈압 같은 기저질환이 있는 노동자가 온열질환에 더 취약할 순 있지만, 폭염 대책을 잘 마련한 일터에서 근무한다면 중대재해의 당사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는 건강한 노동자도 일하다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노동자가 과실이나 기저질환으로 산재를 당한 것이라고 기업이 우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산재를 예방할 작업환경을 조성하지 않은 자신의 책임을 숨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를 순순히 묵인한다면 기업이 굳이 비용을 들여가며 노동자의 안전에 투자하려 할까? 기업이 산재의 원인을 노동자의 질환이나 부주의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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