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꿀벌들을 어떻게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꿀벌들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필자 제공
[왜냐면] 김철홍 |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한가위 연휴가 시작됐다. 연휴 기간에 벌초하거나 성묘하러 산에 오를 때는 ‘벌 쏘임’을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불청객처럼 여겨지는 벌이 지난 봄에는 한꺼번에 사라졌다. ‘꿀벌 13억 마리 실종, 양봉 농가 붕괴 위기’, ‘꿀벌 실종사건,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등의 기사가 언론매체를 달궜다.
2021년 10월의 급격한 기온 변화, 지난해 초에는 이상 고온과 한파가 이어지며 봉군을 떠난 꿀벌들이 지쳐 돌아오지 못했다. 11, 12월의 이상 고온에 밀원식물(꽃이 많이 피고 꿀이 많은 식물)의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또 일찍 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표 꿀인 아카시아 벌꿀 양봉은 꽃이 먼저 피는 남부 지역부터 늦게 피는 북부 지역으로 순차적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최근 남부와 북부 간 기온 차가 거의 없어 아카시아 꽃이 전국에서 동시 개화했고, 이에 따라 벌들의 먹이가 부족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결국 기후변화가 꿀벌 실종의 원인이었다.
2017년 유엔(UN)은 인류가 먹는 전 세계 100대 작물 가운데 71%가 꿀벌의 수분(꽃가루받이) 활동으로 매개됨을 강조하고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꿀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5월20일을 ‘세계 꿀벌의 날’로 지정했다. 또한 전 세계 곳곳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꿀벌을 보호하려는 활동과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 농작물 생산액은 매해 24조~28조 원 정도 되는데, 이 가운데 6조 원 이상이 꿀벌 등의 꽃가루받이에 의한 생산이다. 특히 과채류 꽃가루받이에 꿀벌을 매개로 한 사용률은 딸기 100%, 참외 93.1%, 수박 92.7% 등으로 아주 높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생태계의 생물 다양성을 유지·보존하는 데 꿀벌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벌꿀, 프로폴리스, 화분, 봉독, 로열젤리 등 양봉 관련 생산액은 연 66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큰 시장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꿀벌이 사라지면 작물 생산량은 줄어들고 상품 가격은 비싸지는 등의 문제가 생겨 우리 식량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사라진 꿀벌들을 어떻게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꿀벌들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전국에 꿀벌 전문 수의사는 단 두 명만 있어 전방 지역부터 제주도까지 담당하는데, 양봉 농가와 꿀벌업계의 강력한 요청이 있어 꿀벌 수의사를 하게 됐다고 한다. 이들은 양봉 농가를 직접 방문해 꿀벌의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하기도 하고, 양봉 농가 주변 환경도 점검해 꿀벌이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조치한다.
농가의 시름을 커지게 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꿀벌의 천적인데, 진드기와 말벌은 가장 큰 골칫거리다.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던 장수말벌보다는 최근에 외국에서 유입된 등검은말벌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꿀벌을 사냥하고 있다. 말벌의 무서운 점은 꿀벌을 잡아 가슴 부위만 말벌 애벌레에게 가져가 먹인다는 점이다. 육식인 말벌은 한두 마리로도 엄청난 피해를 주기 때문에 꿀벌 전문 수의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좋은 밀원식물을 발굴하고 체계 있는 연구를 통해 밀원식물을 평가하고 밀원을 조성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필요하다.
유럽연합(EU)은 꿀벌에게 피해를 주는 살충제 사용을 중지시키는 법을 제정하고, 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도시 양봉을 권장하기도 하면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등 대도시의 건물 옥상에서 이뤄지는 도시 양봉은 오히려 시골보다도 더 많은 꿀을 생산할 정도다.
국내에서는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차원에서 꿀벌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한화그룹의 탄소 저감 벌집인 ‘솔라 비하이브’ 프로젝트, 케이비(KB)금융의 국민은행 본점 옥상 ‘케이비’(K-Bee) 양봉장 조성, 산불 피해 지역인 경북 울진 밀원 숲 조성, 하나금융의 꿀벌농장 조성과 발달장애인 양봉가 육성 등 취약 계층의 일자리 창출, 포르쉐의 서울 강남구 대모산 꿀벌 정원 조성 등 많은 참여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가장 유능한 농사꾼인 꿀벌 개체 수의 감소는 양봉 농가뿐 아니라 꿀벌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과수·채소 농가에도 치명적이다. 꿀벌의 위기를 식량 위기의 적신호로, 우리 모두의 위기로 인식하는 국민적 관심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도 축산업과 임업의 교차점에 있는 양봉산업에 적합한 산림자원 조성계획을 제시하고, 종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 밀원 조성·관리 형태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