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재개발2지구 상가 세입자들의 천막 농성장. 세입자대책위 제공
[왜냐면] 박용환 |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이사
서울 중구 명동길 83. 명동성당 맞은편인 이곳 2층 ‘주방 만게츠’라는 일본 정통 수제 돈가스 전문점이 있던 곳이다. 현재는 영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건물 2층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미용실이 하나 있다. 이 미용실을 이용하려면 첩보영화에서나 봄 직한 작전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건물 1층에서 전화를 걸면 2층에서 사람이 직접 내려와 신원을 확인하고 굳게 닫힌 철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다. 철문 뒤로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66㎡(20평) 남짓한 미용실이 드러난다. 무슨 전쟁 때 비밀 요새 같은 느낌마저 든다.
‘주방 만게츠’와 ‘미용실’이 있는 이곳은 명동재개발2지구다. 이 건물 앞 인도에선 상가 세입자들이 수개월째 천막 농성 중이고 이 건물에서는 미용실만 유일하게 영업 중이다. 중구청의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해 번거로운 출입 과정을 거쳐야만 미용실을 이용할 수 있다. 을지로를 경계에 두고 위치한 명동2지구는 과거 한때 ‘판넬골목’, ‘먹자골목’이라 불렸던 곳이다. 세입자들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 이곳에서 단골들을 만들어가며 삶을 이어왔다.
그러나 지금 그 삶이 무너질 위기에 있다. 2018년 명동2지구 상가 세입자들은 재개발 이후 대책을 대화를 통해 마련하자며 세입자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재개발 시행사 케이씨에이치(KCH)는 세입자들을 명도소송으로 압박해왔다. 2021년 10월8일 명동2지구 사진관 ‘블루문스튜디오’가 강제철거됐고, 올해 5월10일 ‘주방 만게츠’에 또다시 강제집행 예고장이 붙었다. 명동2지구 세입자들은 더 이상 삶에서 쫓겨날 수 없기에 5월17일부터 명동성당 맞은편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24시간 농성장을 지키며 생활하고 있다.
관할 구청인 중구청은 세입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알면서도 사실상 방관해 왔다. 그동안 세입자대책위는 세입자 대책이 포함된 중구청의 자체적인 재개발 인가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해왔고 구청의 주재 아래 시행사와의 대화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재개발 사업인가권자인 중구청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해 왔다. 최근에야 간신히 세입자대책위, 시행사, 중구청이 함께하는 대화 자리가 마련됐지만 아직 풀어갈 길이 요원하다.
가게는 삶이다. 명동2지구 세입자들이 계속해서 장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요구다. 당연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면 이에 걸맞은 합당한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속히 대책이 마련돼 세입자들의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관계 당국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와 정치권의 관심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