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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김건희 여사는 침묵할 권리가 없다

등록 2023-12-26 09:00수정 2023-12-26 10:30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5일 성남 서울공항 2층 실내행사장으로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5일 성남 서울공항 2층 실내행사장으로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문상배│60대·서울시 강남구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만 하겠다”고 울먹이며 했던 말은 온데간데없고 그 어떤 영부인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여사 주변에 보통의 상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여러 논란이 생기고 논란이 해소되기도 전에 새로운 논란이 기존 논란을 덮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의 제2부속실 폐지 공약은 배우자의 활동을 최소화하려는 취지로 해석했다. 착각이었다. 제2부속실은 배우자의 활동을 자유롭게 하려고 없앤 게 아닌가 싶다.

국민들이 김여사의 논란에 뜨악한 지점은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김 여사가 설립한 코바나컨텐츠 관련 업체가 관저 공사 계약을 따낸 문제, 누군가에겐 김여사가 고가의 장신구를 지인에게 빌린 일, 누군가에겐 김여사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이 취임식에 초청된 사안일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표기한 영어 논문, 누군가에겐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일 것이다.

내가 뜨악한 지점은 지난 8월 중앙경찰학교 졸업식이었다. 졸업식에 참석한 김여사는 여성 졸업생 대표에게 가슴표장을 달아줬다. 모든 공무원의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지 대통령의 배우자가 아니다. 행사 직전 중앙경찰학교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대통령은 졸업생 대표에게 직접 가슴표장을 부착해줌으로써’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자료대로라면 김여사의 가슴표장 수여는 원래 식순에 없던 게 갑자기 들어간 셈이다. ‘서울의소리’ 기자와 통화에서 “내가 정권 잡으면”, 명품백 수수 과정에서 “내가 남북문제를 해결할 것”과 같은 김여사의 표현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김여사 자신의 권력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든다. 그런 이유로 정치권 안팎에서 대통령 부부가 애정 이상의 것을 공유하고 있고 주도권은 김여사에게 있는 것 같다는 말들이 회자하고 있다.

돌아보면 알아차릴 기회는 많았다. 첫 번째 기회는 대통령 후보 배우자로서 허위 학력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을 때다. 사과문 내용이 낯설었다. 그동안 접해온 정치인과 그 가족들의 사과문과 전혀 달랐다. 사과문은 자상한 남편에 대한 자랑과 신변잡사로 일관했다. 선거캠프에서 문안에 손도 못 댄 게 분명해 보였다. 두 번째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이 김여사 팬클럽 ‘건희사랑’을 통해 공개됐을 때다. 대통령실에선 “해당 사진을 외부에 제공한 주체는 여사님일 것 같다”고 했다. 세 번째는 봉하마을 방문 때다. 당시 전직 코바나컨텐츠 임원이 동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대통령실은 “그가 김여사와 가까운 사이고 고향도 그쪽과 비슷해서”라고 설명했다. 김여사를 둘러싼 논란은 규모를 키워 반복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후 출입기자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대통령의 대구 서문시장 방문일정이 김여사 팬클럽에 미리 흘러나갔다. 나토 방문에선 김여사의 오랜 지인이자 이원모 인사비서관의 부인인 신아무개씨가 민간인 신분으로 동행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귀국한 사실이 드러났다.

논란이 다른 논란으로 덮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논문은 관저 공사로, 관저 공사는 장신구로, 장신구는 취임식 초청으로, 이들 논란은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으로 일거에 덮였다. 양평고속도로는 다시 명품백 수수 논란으로 덮이고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해명 없음이다. 대통령실은 사고가 터지면 확인해 보겠다고 하지만 그때뿐이다.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김여사 의혹을 파고들자 김대기 비서실장은 “우리 여사가 뭘 잘못했는지 먼저 말씀해달라”고 맞받았다. 비서실 수장이 이 정도면 다른 참모들은 ‘우리 여사’에 대해 입도 뻥긋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 김여사가 직접 말씀하셔야 한다. 코바나컨텐츠 관련 업체가 입찰공고 3시간 만에 수주에 성공하는데 관여하지 않았는지, 수천만원대 장신구를 어떤 지인에게서 무슨 조건으로 빌렸는지, 취임식에 본인을 수사한 경찰관을 초청한 까닭은 뭔지,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에 어떤 입장인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주가 조작 의혹과 명품백 수수 논란은 다르다. 국민에게 설명할 게 아니라 검찰 조사를 받을 일이다. 특히 명품백 수수 문제는 김영란법이 본질이 아니다. 대화 내용 가운데 금융위원회 인사 개입과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에서 드러난 대통령 배우자의 권력 개입이 본질이다. 이건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고, 수사에 필요한 물증이 나왔다. 김여사는 침묵할 권리가 없다. 대한민국은 김건희의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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