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도올 김용옥 선생의 ‘요한복음 강의’를 통해 제기된 구약 폐기론이 종교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과연 구약 폐기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기원전 60년께 유대 땅은 율법주의자 바리세파와 사두개파의 내전으로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지배계급과 결탁한 율법주의자들은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대변하지 못했다. 예수의 등장과 함께 신약시대가 열렸다. 율법주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가 살고 있는 시대의 헬레니즘 국제화를 읽어내지 못했다. 수백 년 축적된 율법들의 본디 지혜는 없어지고 형식화됐다. 예수 사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1차 종교 회의 때 구약의 율법 구원을 폐기하고 믿음의 구원을 선포하였다. 그러한 선상에서 김용옥 선생의 구약 폐기론에 대한 건전한 담론을 기대한다.
구약에는 인간과 공동체가 성숙해 가는 내면적인 고백과 제도적인 발전 단계들이 기록되어 있다. 자기 조상들의 추한 모습과, 인간적인 위대함을 카이로스 측면에서 기록한 문명의 자산이다. 희년법, 노예법과 같은 법제들은 21세기 법으로도 그 정신을 따라갈 수 없다. 기원전 6~7세기께 이사야나 예레미야 세계정신과 정의감은, 농업혁명과 도시혁명으로 이루어진 물질문명과는 달리, 정신문명의 한 축을 이루었다고 본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21세기 패러다임으로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구약 폐기론’은 시대를 생산적으로 통합하지 못하는 한국 기독교 현실에 대한 비판이지, 구약정신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예수는 예루살렘 공동체에 구약 정신을 완성하고 생산적인 공동체의 회복을 위하여 회개, 용서, 사랑, 은총의 복음을 선포하였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말씀을 전할 때 구약을 여러 번 인용했다. 아마 도올 김용옥 선생이 말한 구약 폐기론은 그 사회를 치유할 수 없는 율법적 폐쇄성, 이웃 사마리아를 적대시했던 증오의 마음, 안식일 나눔에 분노했던 비인간화에 대한 비판이라고 본다. 구약 담론이 형성되는 것도 한국 기독교가 예수 시대의 복음의 영성과 사회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반도에서 초기 기독교는 조선 땅에 근대정신의 시초가 되었고, 신분질서에 따른 인간 차별의 철폐를 주장했으며, 남녀평등 사상을 부르짖은 실학파 이익과 〈주교요지〉를 지은 정약종의 시대정신이 있었다. 그러나 기복신앙, 개별교회주의, 신학 빈곤화, 기독교 사학 사유화로 기독교는 위기를 맞고 있다.
성서의 저자들은 그 시대에 목숨을 내던진 순교자들이었다. 그 실존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이 체험되지 않으면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인 면에 들어가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의 강의에 한계가 있지만 학자적인 관점에서의 통찰력은 참조하여야 한다.
1930년대 와이엠시에이(YMCA) 총무 신흥우와 최용신 등이 기독교적 사명을 가지고 농촌지원 사업을 하였던 것처럼, 기독교는 21세기 세대의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공동체 운동을 하여야 한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21세기 패러다임으로 생명공학, 환경오염,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차기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정치집단화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선한 낙오자들의 자활을 위한 에너지원을 창출해야 한다. 지금으로선, 이런 구실을 한국 기독교계가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비관적이다. 그럼에도, 생명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으로 창조적인 조직과 지도자들이 나오리라 확신한다.
기독교는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를 아우르는 복음의 총체성 회복에 선도적 구실을 해야 한다. ‘구약 폐기론’은 시대를 생산적으로 통합하지 못하는 한국 기독교 현실에 대한 비판이지, 구약정신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기독교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성서의 참뜻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망하기 전에 돌아가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심철무 /한국원자력연구소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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