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령 위원장(왼쪽 셋째) 등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의 북한·통일 관련 보도를 주제로 회의를 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북한·통일 관련 보도 분석
북한·통일 관련 보도 분석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한 ‘통일대박’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선일보> 등 보수 성향 언론들도 앞다퉈 ‘통일대박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겨레>는 지난달 통일대박론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기획 시리즈를 5차례에 걸쳐 게재했다. 지난 10일 열린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5차 회의는 ‘통일대박론을 넘자’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번 기획물을 포함해 한겨레의 북한·통일 관련 보도를 집중 논의했다.
다수의 열린편집위원들은 한겨레가 신속하게 적지 않은 분량의 기획 시리즈를 통해 통일대박론의 위험성과 그 실체의 모호함을 잘 다뤘으나, 대박론이 왜 갑작스럽게 제기됐는지에 대한 배경을 심층적으로 짚어내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한반도 안팎의 상황 변화에 근거해 실사구시적이고 현실적인 통일 기획을 독자적으로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시민사회 영역에서 통일 논의가 침체되고 한겨레 지면에서도 통일 논의가 풍성하지 못한 사이에 오히려 박근혜 정부와 보수 진영에서 통일담론을 사회적 의제로 선점하는 상황이 온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신인령 위원장의 사회로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열린편집위 회의 내용을 정리해 지상중계한다.
■ 흡수통일 비판한 관점 풍부하지 못해…‘나에게 통일은 뭔가’ 장기적 기획 필요
신인령 위원장 연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언급하면서 통일대박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다. 한겨레는 지난달 통일대박론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기획물 ‘박근혜 정부 통일대박론을 넘자’(<한겨레> 2월17~24일치)를 5회에 걸쳐 연재했다. 오늘 회의에선 통일대박론 관련 기사를 포함해 한겨레 지면의 북한·통일 관련 보도의 태도와 관점, 내용을 중심으로 얘기해보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통일대박론을 넘자’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한겨레의 특성을 잘 살린 기획보도였다. 통일대박론은 현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실상의 흡수통일론에 가까운 것인데, 경제적 측면의 통일론을 내세워 우울하고 답답한 국내 경제 상황을 잠시 잊게 하려는 마취제 성격의 정치적 의제라는 점을 비판하고 이를 넘어서려 한 것 같다. 2월17일치 관련 기사 중 평양에 치킨집을 냈다가 쪽박을 찬 사례는 대박과 쪽박을 선명하게 대비해 보여주었다. 이 연재물을 기획한 곳이 한겨레평화연구소다. 한겨레신문사 내부에 있는 연구소의 역할을 지면을 통해 보여준 것도 좋았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진짜로 통일이 필요한지, 또 통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상황인지를 둘러싼 의문이 상당수 국민들에게 있다. 건전한 통일여론 형성은 한겨레가 해야 할 역할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잘 부르지 않는 지금, 통일 논의를 꼭 해야 하는가라는 기초적인 논의를 지면에서 장기적으로 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획은 통일대박론에 대한 반론의 근거 제시 정도였다. 백두혈통, 3대 세습, ‘고모부 죽이는 김정은’ 등으로 표현되는 북쪽 집단에 대해 젊은 세대의 반통일 의식이 강한 편이다.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오히려 어마어마한 비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청소년과 대학생, 비정규직 등의 입장에서 과연 나에게 통일은 뭔지를 논의하는 기사가 필요하다. 흔히 정치 기사에서 정당 지지 등을 놓고 유권자를 심층면접해 지면에 싣는데 통일 논의에서도 그런 심층면접 기사를 보여달라.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넘어서자’는 담론에 치중한 나머지 통일대박 담론 내부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검증하는 데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통일대박론을 주창하는 쪽의 논리 안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있다는 점을 짚어줄 필요가 있었다.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태에 대한 현 정부의 대응과 조처들은 박 대통령이 제기한 통일대박 주장과 어긋나고 있다. 통일대박론이 그런 대응과 비정상적으로 분리된 채 경제적 측면만 부각하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지는 못했다. 현 정부가 남북 접촉 방북승인도 거의 해주지 않고, 대북 제재인 ‘5·24 조처’ 해제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데 과연 어떤 방향으로 통일대박론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인지 심층적인 비판이 이뤄지지 못했다.
흡수통일 우려와 비판 담으며
‘대박론’ 위험성 잘 지적했지만
박근혜정부의 담론 넘지 못하고
그 프레임 속에 갇힌 느낌 들어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기획 의도와 달리 사실은 통일대박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한겨레가 오히려 거기에 말려들었다고 본다. 하나가 돼야 한다는 통일이란 말이 주는 이미지 탓에 통일을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쉽게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통일과 남북분단문제 극복은 어떤 의미에선 서로 다른 문제다. 분단체제는 남과 북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분단체제 극복은 남과 북을 넘어 다양한 이념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을 만든다는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치자는 통일과는 좀 다른 문제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오고 몇달 뒤 유신헌법이 공포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은 7·4 성명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며 유신헌법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다면 국민들은 통일을 원치 않는 것으로 여기겠다고 위협했다. 그래서 독재 헌법인데도 많은 사람이 지지했다. 지금 통일대박론이 나온 배경에도 그때처럼 박근혜 대통령 지지 여부라는 대목이 깔려 있다고 본다. 한겨레 지면에선 그런 대목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를 인터뷰한 기사(<한겨레> 2월17일치 5면)에서 ‘1990년 독일 통일 사례를 흡수통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사실 동독 통일 과정은 흡수통일이었다. 동독 주민들이 원했는지 원치 않았는지 여부가 판단의 잣대는 아니다. 동독 주민이 동의했다 해도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없어지고 독일연방공화국으로 편입된 방식은 틀림없는 흡수통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없어지고 대한민국으로 편입된다면 흡수통일이 분명하다. 흡수통일에 대한 비판은 있었으나, 대한민국도 조선인민공화국도 아닌 제3의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통일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점을 한겨레 지면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시리즈 세번째 꼭지인 ‘새로운 한반도를 상상하자’라는 가상 시나리오에서도 상상력 빈곤이 보였다. ■ ‘왜 갑자기 통일대박론인가’ 심층 조명 안 돼…전문가 담론 탈피하고 독자적 기획 해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처음엔 ‘대박’ 표현이 좀 경박해 보였으나, 통일을 둘러싼 이해당사자가 워낙 많고 역사적 경험도 세대별로 크게 다른 점을 감안할 때 어쩌면 통일을 대중적으로 이해하는 한 표현이 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가리기 위한 정략적 측면이 강하겠으나, 그동안 진보와 보수 진영이 통일담론을 둘러싸고 극명하게 나뉜 채 소통하지 못했는데 이 ‘대박’ 표현이 전향적이고 실사구시적으로 양쪽 진영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편에선 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드러났지만 남북관계에서 가장 전향적인 정부 때 국내적으로 비정규직 양산 등 사회경제적 정책의 실패가 나타나는 역설이 있었다. 통일이나 남북관계는 분단 한반도의 특성상 국민적 지지를 좀더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빅 이슈로서 정책적 우선순위가 정권마다 있었다. 박 대통령이 왜 느닷없이 대박론을 들고나왔는지와 관련해 이런 점을 이번 기획에서 제대로 조명하지는 못했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내부 갈등 문제를 회피하고 국정원 사태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뒤집기 위해 교묘하게 통일담론을 포장해 대표 상품으로 얘기하고 나온 것이다. 이런 구조적 배경과 박근혜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함께 짚어야 했다. 덧붙여 통일담론이 남북 정권 당사자만이 주도하는 지형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한겨레 지면에서 비판·견인해야 한다. 비정규직, 농민, 이주민 등 가장 열악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통일은 급박하거나 절박한 게 아니다.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온 상황에서 한겨레는 통일담론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야 할 그런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심층 취재해 담아내야 한다. 정부나 전문가의 통일담론 프레임 안에서만 논의하면 위험하다. 한겨레의 독자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나에게 통일은 뭘까’ 시민들 논의 이끌 장기기획 다루길” 김재영 충남대 교수 새누리당 쪽은 쉽게 잘 전달되고 호소력 있는 표현을 곧잘 쓴다. 지난 대선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참여정부의 안보정책을 공격하면서 ‘가짜 평화’라고 규정하고, ‘진짜 평화’와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통일대박론도 우스꽝스런 표현이고 논리적으로 말이 잘 안됨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각인되는 효과는 매우 크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가 ‘대박론을 넘자’를 내걸고 나서는 건 자칫 그 프레임 속에 지고 들어가는 격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프레임 속에서 갇힌 채로 싸우는 양상이 되는 셈이다.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섹션에 ‘학교 통일교육은 쪽박 신세’라는 제목의 기사(<한겨레> 2월25일치 22면)가 있었다. 그 기사에서 시사하듯 대안적인 프레임을 한겨레가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제시해야 한다. 통일대박론은 실체가 없고 목표만 있을 뿐 그 과정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번 통일대박론 점검 기획의 논조였다. 올바르고 진지한 접근이다. 그럼에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진단으로 흘렀다. 뽑은 제목만 봐도 ‘진보와 보수, 만나야 한다’ ‘이념 문제 뛰어넘어라, 통일은 한반도의 행복공동체 건설’, ‘성장주의 버리고 생태적 통일 한반도를 만들자’ 등이다. 다 맞는 말이지만, 복잡하고 딱딱한 주제일수록 내러티브와 스토리 전개 방식으로 독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덧붙여, 통일대박과 관련해 모든 것을 눈을 모로 뜨고 볼 일은 아니다. 통일대박은 그 진정성 여부를 떠나서 최소한 우리 사회에 통일문제를 환기한 측면은 있다. 청와대가 얼마 전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발표하자 한겨레가 2면 해설기사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나 통일부와 기능이 중복되고 옥상옥이 되기 십상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제시했으면 그런 직속 조직을 둘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시점에서 정말 궁금한 건 왜 올해 들어 갑자기 청와대와 조선일보 등 보수진영에서 통일대박론을 내세우고 있는지, 지방선거용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런 합리적 의심을 기사 맥락 속에서 짚어주고 풀어주지는 못했다. 고윤덕 변호사 대박론이 올 들어 워낙 뜬금없이 나오고 선언적인 이미지로 얘기되다 보니 자세히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최신 논의를 접할 수 있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인터뷰 기사에서, 포용정책을 통해 화해하고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 활성화를 통해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해야 한다는 개념이 신선했다. 경제적 접근의 통일담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을 기사에 담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런 ‘사실상의 통일’ 개념 아래 경제적 접근도 유용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시리즈 기획물 네번째 꼭지에 나온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남북한 소분단체제’도 새롭게 접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통일에서 북한도 주인’이라고 제목을 내세웠으면서도 기사 본문엔 경제특구와 외자 유치에 대한 북한의 태도에 따라 통일이 대박이 될 수도 쪽박이 될 수도 있다고 썼다. 이는, 통일대박론이 경제적 효과 측면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겨레가 비판한 것과 서로 모순되는 듯해 어색했다. 기획물에 게재된 기사의 상당수가 외부 기고문이다. 통일 논의가 민감한 사안인 만큼 촉발될 수 있는 논쟁적 화살을 한겨레가 소극적으로 피해가려고 그런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통일담론 전문가 코멘트에서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 연구원 외에는 다른 의견과 입장을 다양하게 포괄하지 못했다.
시민사회 통일 논의 침체 속에서
한겨레 지면에도 분단문제 기사 부족
피부에 와닿는 통일 논의 담고
새로운 한반도 대안담론 제시했으면
■ 젊은층의 통일 인식, 기사에 안 보여…통일대박론 기획은 긴급대응 처방의 성격 오지연 숙명여대 학보편집장 5회에 걸쳐 크게 실었으나 새로운 논의가 그다지 없고 원론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통일 관련 전문가 코멘트와 기고 글이 많았는데 전문가들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게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함께하는 교육’ 섹션에 실은 ‘학교 통일교육의 현주소’ 기사는 도덕과 윤리 교과서 중심으로 얘기하고 있을 뿐 정작 한국사 교과서에서 통일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었다. 통일을 도덕 교과 차원에서만 봤을 뿐 해방 이후 현대사에서 통일담론의 전개과정을 다루지 못했다. 통일교육의 부재를 지적하는 근거도 대부분 학교 교사들의 코멘트 중심으로 제시했다. 학생이나 교육부, 교과서를 만드는 쪽 등 다양한 당사자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어야 했다. 5회 연재물 중 ‘진보와 보수, 만나야 한다’와 ‘북한도 통일의 주인이다’ 꼭지를 보면 사실상 대한민국 헌법이나 남쪽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통일담론을 말하고 있다. 대학생 등 젊은층에선 통일까지는 원하지 않고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정도가 좋다는 생각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한겨레의 이번 기획은 오직 통일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좀 아쉬웠다. 정재권 에디터부문장 지난해 말에 조선일보가 통일을 주제로 하는 장기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연초에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통일이 미래다’ 관련 기획물을 보고 편집국 간부들이 ‘왜 느닷없이 통일 이슈를 꺼냈을까’라며 좀 안이하게 판단했던 것같다. 그런데 보수적이고 강경한 대북 메시지를 내놓았던 박근혜 정부가 갑자기 신년 기자회견 때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오면서 실질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음에도 통일 이슈가 의제로 급부상했다.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겨레가 사실 수세적 기획물을 내놓게 된 셈이다. 차분히 시간을 갖고 한겨레만의 방식과 의제 설정을 해서 대응하기엔 시간적으로 촉박했다. 기사가 다소 딱딱해질지라도 통일대박론을 담론 중심으로 우선 점검하는 기획물을 한겨레평화연구소를 중심으로 내보내게 된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이번 기획에서 통일대박론이 구호만 있고 실체는 없이 비어 있다는 점을 주로 지적했다. 이후 진행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에서도 나왔지만, 통일대박론이 (통일론을 넘어) 교묘한 정치적 ‘통치담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정부가 통일대박 주장을 밀고 나가면서 이에 반대하는 쪽은 모두 ‘종북’으로 규정해 몰아치는 식으로 주도권을 장악해 나가는 등 강력한 통치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판단도 긴급처방 성격으로 통일대박론을 점검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기획물 두번째 꼭지인 ‘북한도 통일의 주인이다’(<한겨레> 2월19일치 6면)에서 기고 두 편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쪽 사람들이 쓴 것이다. 통일 논의에서 북쪽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의미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일간지에서는 처음으로 북쪽의 기고를 그대로 실었다. 과거에 통일론을 주도했던 진보진영 내부의 통일 논의가 지금 매우 약화되고 황폐화돼 있다. 그들의 통일담론은 대중적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고 민주당마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에서 후퇴하려 하고 있다. 한겨레가 지면에서 대안적이고 진보적인 통일 논의를 모아내는 작업을 해야 할 시점인 건 분명하다. 그리고 특히 북한의 큰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의 북-미 적대관계 청산 및 평화체제 이슈에서 방향을 틀어 지금은 외자 유치 등 경제문제가 북쪽에서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표출되는 지형이 80년대에 견줘 크게 달라졌다. 통일대박론이 힘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남쪽에서 통일대박을 주창하는 가운데 북쪽이 외자 유치, 관광 확대, 개방 등으로 호응하는 측면이 있다.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김 소장의 말처럼 진보개혁 진영 및 시민사회단체의 통일담론이 약화되고 있다. 한겨레가 창간 때부터 다른 신문과 차별화된 가치로 표방하고 추구해온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분단 극복과 통일이다. 그런데 시민사회 영역에서의 통일 논의 침체와 더불어 한겨레 지면에서도 근래 들어 통일 의제와 분단문제에 대한 공세적인 의제 설정이나 기획기사가 드문 것 같다. 그런 사이에 박 대통령이 오히려 통일담론을 대표 상품으로 채택하고 가져간 느낌이 든다.
■ ‘통일 논의의 대박’을 장기 기획으로…‘남한도 변해야’를 짚어줘야
신인령 통일대박론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지면을 신속하고 방대하게 실었다. 시의적절하게 긴급처방으로 지면에서 대응했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통일담론에서 한겨레가 보수진영에 밀려 수세적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통일대박론이 회자되면서 뭔가 답답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조중동’과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한겨레가 서둘러 선보여 한숨 놓았다. (대박론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차원이 아니라) 전혀 다른 어떤 통일론부터 한겨레가 제기했다면 자칫 종북 프레임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고 본다. 통일담론은 대중의 상식과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씩 유연하게 보도해 가야 한다. 진보진영이 대박론을 얘기하면 바로 종북으로 몰릴 텐데 정부에서 대박론을 꺼냈기에 오히려 한겨레 지면에서 이야기할 지평은 넓어졌다. 통일담론은 민감한 만큼 독자들이 겁먹지 않고 안심하면서 관련 기사를 읽게 하는 방식이 좋다. 그냥 시원시원하게 지면에 쓰는 방식은 피하길 바란다.
오창익 진보개혁 진영이 지금 통일대박을 말하면 종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전향 또는 투항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지난 20여년간 통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떨어졌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통일을 진부한 가치로 여기고 염증 같은 것도 갖는 상황에서 한겨레의 역할은 무엇일까. 전문가, 연구자,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논의에서 벗어나 통일에 대해 평소에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통일이 미칠 또 반대로 그 사람들이 통일에 미칠 영향을 보여주는 장기 기획을 해보자. 통일대박이 아니라 통일 논의의 대박을 만들어보자. 80~90년대 재야 중심의 통일 논의가 힘을 받은 기반에는 역량 있는 재야 학자들의 예언자적 통일론 제기가 아니라 기층에서 통일 논의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김재영 영국 <비비시>(BBC)는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않지만 국민들은 꼭 필요한 방송으로 여긴다. 한겨레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공영방송 같은 존재다. 통일대박론을 비판해 짚어주면 독자들도 후련해한다. 하지만 당위적으로 존재하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넘어 깊숙이 파고들어 피부에 와 닿게 통일 논의를 보도해야 한다. 신문 기사 수준은 중학교 3학년 정도가 읽고 이해하기 딱 맞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한겨레에선 그 접점을 찾기 쉽지 않다. 과거에 정서적 수준에서 통일을 호소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대기업 자본의 이해를 비판하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오히려 대기업의 파이를 키우는 점까지 포함해서 통일이 실질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지나치게 실리적이라는 말을 들을지라도 우리에게 통일이 주는 효과가 무엇인지 현실적이고 쉽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남신 종북으로 몰리는 통합진보당 세력이 어떤 의미에선 정통 통일세력이었는데 오히려 반통일세력으로 지칭돼온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왔다. 그동안 통일은 무엇인가, 북쪽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북핵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둘러싼 진보진영 내부의 지루한 논쟁이 통일담론의 진화를 막아온 측면이 있다. 진보진영 내부의 치부인 셈인데, 이 대목도 한겨레가 짚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 사이뿐 아니라 진보와 보수 각각의 내부에서도 통일방법론을 놓고 논란이 있다. 진영논리를 넘어 합리적인 통일논의를 한겨레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
김영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화 이후에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재검토하자는 개념이다. 마찬가지로 햇볕정책과 평화·번영 그 이후 새로운 한반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숙한 논의와 새로운 대안 담론을 한겨레 지면에서 제시해 달라. 이때, 민간 시민사회 중심으로 통일 논의가 일어난 80년대와 지금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통일을 싫어하던 기업가들이 지금은 술자리에서 ‘통일대박’ 건배를 흔히 하고, 보수적인 정부에서조차 대박론을 들고나오지 않았는가.
신인령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설정하고 있어서 그 자체가 흡수통일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헌법상 통일은 곧 흡수통일이고, 새로운 북진통일론이 되고 만다. 지금 통일대박론은 헌법적 근거를 가지고서 자신만만하게 흡수통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젊은 헌법학자들의 의견을 참고해 이런 대목도 관련 기사에 담아줄 필요가 있다.
후지이 다케시 통일을 얘기할 때면 꼭 시선이 북쪽으로만 향한다. 북쪽이 변하고 있으므로 통일이 가능해지고 있다거나, 거꾸로 저런 북쪽 체제 사람들과 어떻게 통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한다. 통일을 위해선 남쪽의 헌법과 정권, 사람들도 변해야 한다는 점을 한겨레가 지적해야 한다.
정리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kyewan@hani.co.kr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 (참석자)
<위원장>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사외 위원>
고윤덕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김재영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오지연 숙명여대 학보편집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사내 위원>
정재권 편집국 에디터부문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위원장>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사외 위원>
고윤덕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김재영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오지연 숙명여대 학보편집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사내 위원>
정재권 편집국 에디터부문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흡수통일 우려와 비판 담으며
‘대박론’ 위험성 잘 지적했지만
박근혜정부의 담론 넘지 못하고
그 프레임 속에 갇힌 느낌 들어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기획 의도와 달리 사실은 통일대박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한겨레가 오히려 거기에 말려들었다고 본다. 하나가 돼야 한다는 통일이란 말이 주는 이미지 탓에 통일을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쉽게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통일과 남북분단문제 극복은 어떤 의미에선 서로 다른 문제다. 분단체제는 남과 북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분단체제 극복은 남과 북을 넘어 다양한 이념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을 만든다는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치자는 통일과는 좀 다른 문제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오고 몇달 뒤 유신헌법이 공포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은 7·4 성명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며 유신헌법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다면 국민들은 통일을 원치 않는 것으로 여기겠다고 위협했다. 그래서 독재 헌법인데도 많은 사람이 지지했다. 지금 통일대박론이 나온 배경에도 그때처럼 박근혜 대통령 지지 여부라는 대목이 깔려 있다고 본다. 한겨레 지면에선 그런 대목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를 인터뷰한 기사(<한겨레> 2월17일치 5면)에서 ‘1990년 독일 통일 사례를 흡수통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사실 동독 통일 과정은 흡수통일이었다. 동독 주민들이 원했는지 원치 않았는지 여부가 판단의 잣대는 아니다. 동독 주민이 동의했다 해도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없어지고 독일연방공화국으로 편입된 방식은 틀림없는 흡수통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없어지고 대한민국으로 편입된다면 흡수통일이 분명하다. 흡수통일에 대한 비판은 있었으나, 대한민국도 조선인민공화국도 아닌 제3의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통일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점을 한겨레 지면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시리즈 세번째 꼭지인 ‘새로운 한반도를 상상하자’라는 가상 시나리오에서도 상상력 빈곤이 보였다. ■ ‘왜 갑자기 통일대박론인가’ 심층 조명 안 돼…전문가 담론 탈피하고 독자적 기획 해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처음엔 ‘대박’ 표현이 좀 경박해 보였으나, 통일을 둘러싼 이해당사자가 워낙 많고 역사적 경험도 세대별로 크게 다른 점을 감안할 때 어쩌면 통일을 대중적으로 이해하는 한 표현이 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가리기 위한 정략적 측면이 강하겠으나, 그동안 진보와 보수 진영이 통일담론을 둘러싸고 극명하게 나뉜 채 소통하지 못했는데 이 ‘대박’ 표현이 전향적이고 실사구시적으로 양쪽 진영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편에선 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드러났지만 남북관계에서 가장 전향적인 정부 때 국내적으로 비정규직 양산 등 사회경제적 정책의 실패가 나타나는 역설이 있었다. 통일이나 남북관계는 분단 한반도의 특성상 국민적 지지를 좀더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빅 이슈로서 정책적 우선순위가 정권마다 있었다. 박 대통령이 왜 느닷없이 대박론을 들고나왔는지와 관련해 이런 점을 이번 기획에서 제대로 조명하지는 못했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내부 갈등 문제를 회피하고 국정원 사태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뒤집기 위해 교묘하게 통일담론을 포장해 대표 상품으로 얘기하고 나온 것이다. 이런 구조적 배경과 박근혜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함께 짚어야 했다. 덧붙여 통일담론이 남북 정권 당사자만이 주도하는 지형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한겨레 지면에서 비판·견인해야 한다. 비정규직, 농민, 이주민 등 가장 열악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통일은 급박하거나 절박한 게 아니다.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온 상황에서 한겨레는 통일담론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야 할 그런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심층 취재해 담아내야 한다. 정부나 전문가의 통일담론 프레임 안에서만 논의하면 위험하다. 한겨레의 독자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나에게 통일은 뭘까’ 시민들 논의 이끌 장기기획 다루길” 김재영 충남대 교수 새누리당 쪽은 쉽게 잘 전달되고 호소력 있는 표현을 곧잘 쓴다. 지난 대선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참여정부의 안보정책을 공격하면서 ‘가짜 평화’라고 규정하고, ‘진짜 평화’와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통일대박론도 우스꽝스런 표현이고 논리적으로 말이 잘 안됨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각인되는 효과는 매우 크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가 ‘대박론을 넘자’를 내걸고 나서는 건 자칫 그 프레임 속에 지고 들어가는 격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프레임 속에서 갇힌 채로 싸우는 양상이 되는 셈이다.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섹션에 ‘학교 통일교육은 쪽박 신세’라는 제목의 기사(<한겨레> 2월25일치 22면)가 있었다. 그 기사에서 시사하듯 대안적인 프레임을 한겨레가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제시해야 한다. 통일대박론은 실체가 없고 목표만 있을 뿐 그 과정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번 통일대박론 점검 기획의 논조였다. 올바르고 진지한 접근이다. 그럼에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진단으로 흘렀다. 뽑은 제목만 봐도 ‘진보와 보수, 만나야 한다’ ‘이념 문제 뛰어넘어라, 통일은 한반도의 행복공동체 건설’, ‘성장주의 버리고 생태적 통일 한반도를 만들자’ 등이다. 다 맞는 말이지만, 복잡하고 딱딱한 주제일수록 내러티브와 스토리 전개 방식으로 독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덧붙여, 통일대박과 관련해 모든 것을 눈을 모로 뜨고 볼 일은 아니다. 통일대박은 그 진정성 여부를 떠나서 최소한 우리 사회에 통일문제를 환기한 측면은 있다. 청와대가 얼마 전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발표하자 한겨레가 2면 해설기사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나 통일부와 기능이 중복되고 옥상옥이 되기 십상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제시했으면 그런 직속 조직을 둘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시점에서 정말 궁금한 건 왜 올해 들어 갑자기 청와대와 조선일보 등 보수진영에서 통일대박론을 내세우고 있는지, 지방선거용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런 합리적 의심을 기사 맥락 속에서 짚어주고 풀어주지는 못했다. 고윤덕 변호사 대박론이 올 들어 워낙 뜬금없이 나오고 선언적인 이미지로 얘기되다 보니 자세히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최신 논의를 접할 수 있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인터뷰 기사에서, 포용정책을 통해 화해하고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 활성화를 통해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해야 한다는 개념이 신선했다. 경제적 접근의 통일담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을 기사에 담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런 ‘사실상의 통일’ 개념 아래 경제적 접근도 유용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시리즈 기획물 네번째 꼭지에 나온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남북한 소분단체제’도 새롭게 접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통일에서 북한도 주인’이라고 제목을 내세웠으면서도 기사 본문엔 경제특구와 외자 유치에 대한 북한의 태도에 따라 통일이 대박이 될 수도 쪽박이 될 수도 있다고 썼다. 이는, 통일대박론이 경제적 효과 측면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겨레가 비판한 것과 서로 모순되는 듯해 어색했다. 기획물에 게재된 기사의 상당수가 외부 기고문이다. 통일 논의가 민감한 사안인 만큼 촉발될 수 있는 논쟁적 화살을 한겨레가 소극적으로 피해가려고 그런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통일담론 전문가 코멘트에서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 연구원 외에는 다른 의견과 입장을 다양하게 포괄하지 못했다.
시민사회 통일 논의 침체 속에서
한겨레 지면에도 분단문제 기사 부족
피부에 와닿는 통일 논의 담고
새로운 한반도 대안담론 제시했으면
■ 젊은층의 통일 인식, 기사에 안 보여…통일대박론 기획은 긴급대응 처방의 성격 오지연 숙명여대 학보편집장 5회에 걸쳐 크게 실었으나 새로운 논의가 그다지 없고 원론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통일 관련 전문가 코멘트와 기고 글이 많았는데 전문가들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게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함께하는 교육’ 섹션에 실은 ‘학교 통일교육의 현주소’ 기사는 도덕과 윤리 교과서 중심으로 얘기하고 있을 뿐 정작 한국사 교과서에서 통일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었다. 통일을 도덕 교과 차원에서만 봤을 뿐 해방 이후 현대사에서 통일담론의 전개과정을 다루지 못했다. 통일교육의 부재를 지적하는 근거도 대부분 학교 교사들의 코멘트 중심으로 제시했다. 학생이나 교육부, 교과서를 만드는 쪽 등 다양한 당사자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어야 했다. 5회 연재물 중 ‘진보와 보수, 만나야 한다’와 ‘북한도 통일의 주인이다’ 꼭지를 보면 사실상 대한민국 헌법이나 남쪽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통일담론을 말하고 있다. 대학생 등 젊은층에선 통일까지는 원하지 않고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정도가 좋다는 생각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한겨레의 이번 기획은 오직 통일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좀 아쉬웠다. 정재권 에디터부문장 지난해 말에 조선일보가 통일을 주제로 하는 장기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연초에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통일이 미래다’ 관련 기획물을 보고 편집국 간부들이 ‘왜 느닷없이 통일 이슈를 꺼냈을까’라며 좀 안이하게 판단했던 것같다. 그런데 보수적이고 강경한 대북 메시지를 내놓았던 박근혜 정부가 갑자기 신년 기자회견 때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오면서 실질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음에도 통일 이슈가 의제로 급부상했다.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겨레가 사실 수세적 기획물을 내놓게 된 셈이다. 차분히 시간을 갖고 한겨레만의 방식과 의제 설정을 해서 대응하기엔 시간적으로 촉박했다. 기사가 다소 딱딱해질지라도 통일대박론을 담론 중심으로 우선 점검하는 기획물을 한겨레평화연구소를 중심으로 내보내게 된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이번 기획에서 통일대박론이 구호만 있고 실체는 없이 비어 있다는 점을 주로 지적했다. 이후 진행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에서도 나왔지만, 통일대박론이 (통일론을 넘어) 교묘한 정치적 ‘통치담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정부가 통일대박 주장을 밀고 나가면서 이에 반대하는 쪽은 모두 ‘종북’으로 규정해 몰아치는 식으로 주도권을 장악해 나가는 등 강력한 통치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판단도 긴급처방 성격으로 통일대박론을 점검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기획물 두번째 꼭지인 ‘북한도 통일의 주인이다’(<한겨레> 2월19일치 6면)에서 기고 두 편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쪽 사람들이 쓴 것이다. 통일 논의에서 북쪽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의미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일간지에서는 처음으로 북쪽의 기고를 그대로 실었다. 과거에 통일론을 주도했던 진보진영 내부의 통일 논의가 지금 매우 약화되고 황폐화돼 있다. 그들의 통일담론은 대중적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고 민주당마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에서 후퇴하려 하고 있다. 한겨레가 지면에서 대안적이고 진보적인 통일 논의를 모아내는 작업을 해야 할 시점인 건 분명하다. 그리고 특히 북한의 큰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의 북-미 적대관계 청산 및 평화체제 이슈에서 방향을 틀어 지금은 외자 유치 등 경제문제가 북쪽에서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표출되는 지형이 80년대에 견줘 크게 달라졌다. 통일대박론이 힘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남쪽에서 통일대박을 주창하는 가운데 북쪽이 외자 유치, 관광 확대, 개방 등으로 호응하는 측면이 있다.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김 소장의 말처럼 진보개혁 진영 및 시민사회단체의 통일담론이 약화되고 있다. 한겨레가 창간 때부터 다른 신문과 차별화된 가치로 표방하고 추구해온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분단 극복과 통일이다. 그런데 시민사회 영역에서의 통일 논의 침체와 더불어 한겨레 지면에서도 근래 들어 통일 의제와 분단문제에 대한 공세적인 의제 설정이나 기획기사가 드문 것 같다. 그런 사이에 박 대통령이 오히려 통일담론을 대표 상품으로 채택하고 가져간 느낌이 든다.
2월17일치 5면, 2월25일치 22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