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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 김한길

등록 2014-12-08 18:54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 있는가.

이를테면 1912년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미국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변화를 몰고 왔다. 타이타닉호는 그때까지의 자본주의가 이룩한 부를 상징하는 초호화 여객선이었다. 타이타닉호가 처녀 항해에서 침몰했을 때, 1500여명이 죽고 700여명이 구조됐다. 하지만 생존자는 주로 1등실의 부자들이었다. 미국 국민은 분노했고, 타이타닉호 이전과는 다른 미국을 요구했다.

그 결과 부자들의 특권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불붙었고, 누진소득세의 근거를 담은 수정헌법 16조가 통과되는 역사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이어 록펠러, 카네기, 포드 등이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면서 사실상 미국 재벌의 해체가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화제를 모은 토마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에서도 20세기 초 서구의 소득불평등을 완화시킨 요인으로 누진소득세의 도입을 꼽고 있는 것을 보면,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계기로 비롯된 변화의 파장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처럼 타이타닉호 참사는 미국 사회를 질적으로 변화시킨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여야 정치인과 여론을 이끄는 분들이 앞장서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도 눈물을 흘리면서 ‘국가개조’까지 거론하지 않았던가. 물질과 효율, 탐욕보다 사람이 더 중요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온 국민이 뜨겁게 요구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국민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자신들이 국가로부터 함부로 취급당하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돈과 권력과 기회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은 아이들이 타고 있던 세월호의 비극에서 자신과 자식들이 감당해야 할 삶을 예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 분하고 슬펐을 것이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 이처럼 절박하고 근본적인 것임에도, 그 교훈이 안전 문제로 축약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안전도 중요하지만, 안전은 행복의 한 조건일 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이혼율, 노인빈곤율, 노동시간, 아동우울증…. 그리고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행복지수, 양성평등지수…. 어느새 우리에게는 익숙한 수치들이지만, 사실은 하나하나가 참으로 끔찍한 기록들 아닌가.

세월호가 우리를 비통하게 만든 건, 침몰해가는 세월호에 버려진 채 속절없이 죽어가야 했던 이들의 모습이 우리네 일상과 닮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많은 국민들이 일터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가정에서 존엄한 인간으로 최소한의 대접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한 세월호는 매일매일 우리 마음속에서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산업화가 생존을 위한 물질을 추구하고 민주화가 민주적 제도들을 갖춰가는 시대였다면, 그 물질과 제도가 이제는 사람을 위해 쓰이는 ‘인간화 시대’로 가야 할 때가 되었다.

돈과 권력과 기회를 독점해온 잘난 사람들이 끼리끼리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모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삶과 행복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정치, 그런 대한민국을 세월호는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야 정치권이 모두 공감했으면 좋겠다. 여야가 우리 정치의 큰 지향점을 공유하면서, 거기에 다가가는 정책을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한다면 국민이 우리 정치에 거는 희망도 차츰 살아나지 않을까.

타이타닉호가 미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듯이, 세월호는 이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는 인간화 시대를 요청하고 있다. 마치 세월호 속에서 간절하게 구조대를 기다리듯이….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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