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는 지난해 10월,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해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과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숙식 제공을 약속했던 사업장은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게 했으며, 불법적인 파견근무가 횡행해 이주노동자는 알지도 못하는 곳에 끌려가 일을 해야만 했다. 계약서 내용은 실제 근무 내용과 다른 경우가 많았고, 적절한 휴식과 휴일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쉬는 날 고용주의 집 청소와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강제귀국을 시키겠다는 위협과 폭언까지 듣는 이들도 있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농업 분야의 경우 산업재해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대규모로 이주노동자들을 들여와 안전과 건강에 대해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4년10개월 동안 일하도록 하는 것은 제도적 차별이자 정책적 폭력이다.
미국 국무부도 지난해 ‘2014 한국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거론했다. 국무부는 보고서에서 “일부 이주노동자는 임금 체불, 여권 압수, 채무노예, 성적 가혹행위, 열악한 생활환경 등 강제노동의 징후를 보이는 노동조건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이번 조사 결과와 관련해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선결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근로기준법 제63조와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이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둘째, 일선 출입국 업무 관계자나 경찰, 고용센터 직원들이 인신매매의 국제적 기준을 인지하고 훈련받아야 한다. 셋째, 충분한 통역과 쉼터 등 피해자 지원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고용허가제라는 이주노동 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주노동자를 ‘일하는 기계’처럼 대하는 지금의 시스템을 바꿔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입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도 앞의 보고서에서 “(한국이) 모든 형태의 인신매매를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형법상 ‘인신매매’의 정의를 공식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고용허가제 자체의 문제점만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서 전 사회적으로 ‘인신매매’에 대한 인식 전환을 통해 강제노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와 미국 국무부의 지적과 권고는 우리가 인권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다. 한국 내에서 이주민에 대한 노동착취와 인신매매가 제도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는 평가가 국제사회에서 나오는 것은 국가적인 위상에도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한국은 이미 유엔인권이사회의 이사국 지위까지 올라가 있다.
그리고 이참에 농업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들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직장의료보험을 적용하고, 근무처 변경을 금지하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을 없애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산시의 농촌지역에 가보면 농민들의 평균 연령이 70에 가깝다는 말이 실감난다. 앞으로 20년 뒤에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논과 밭에 풀만 무성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동남아시아에서 농업 이주민들이 들어와 ‘농자천하지대본’ 깃발을 들고 대보름축제를 벌일 날이 올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인권침해 방지와 함께 미래 농업을 위한 정책적 준비이기도 하다.
부디 2015년에는 180만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차별과 착취, 그리고 인신매매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우삼열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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